소유된 '헌책방 가는길'은 결국 사라질 운명인가?

사라진 소녀, 2013

네이버 카페 쇠뿔고갯길에 따르면 쇠뿔고갯길에 그려진 서른세 개의 벽화는 금창동 원주민의 이야기, 1980년대 여성 사회진출의 유일한 장소, 이 두 가지 주제로 조성되었다. 요즘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다른 벽화에서 어느 정도 차별성을 두고 시작했다는 점이 주목할만 하다.

바라보는 이에 따라 생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그렇지만 사라진 '헌책방 가는길'은 나에게 의미가 있는 '소녀'였다. 인천에 살고 있지만 낯설기만 했던 배다리 헌책방을 바라보게 했던 것이 바로 그녀였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벽화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그런 의미가 있었다.

사라졌다. 떠나갔다고 말하고, 싶지만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한 것이니 사라졌다는 말이 타당하다. 태생적으로 벽화는 사라질 운명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누군가 소유한 건물 벽에 그려진 벽화는 그 시기가 더 빨리 찾아오기도 한다. 소유인의 동의로 탄생한 벽화는 소유인이 달라짐에 따라 운명의 갈림길에 놓일 수밖에 없다.

가령 소유 철폐, 혹은 권력 철폐의 길이 너무도 멀다면, 당분간 우리는 소유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소유될 수 없는 것으로 회복시키는 작업을 먼저 수행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강신주, 『철학 VS 철학』, 그린비, 2010, 147쪽

다행스럽게도 보이는 건물만이 아닌 그 동의, 즉 벽화의 탄생 비밀도 언급되었다면 조금 더 그녀를 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나 보다. 바뀐 소유인은 여러 이유를 들어 결국 벽화를 지웠다. 이렇게 그녀는 사라졌다.

이쯤에서 '소유'에 대한 의미를 되씹어 보고 싶다. 내 것이라는 그 의미에서 출발한다면 당연히 그 벽화는 소유될 수 있다. 헌데, 나는 왜 이렇게 불편한가? 과연 그 벽에 있던 벽화가 소유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아니, 소유를 주장하는 것에 동의해야 하는지 말이다.

남아 있는 서른두 개의 벽화도 같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 있다. 결국, 시간의 문제지만 사라진 '헌책방 가는길'의 운명으로 더욱 명확해진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원주민의 이탈이다. 더불어 사는 이가 있어야 토로도 하고 원망할 수 있으며 같이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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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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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

      • 짧은 휴가를 다녀오느라 며칠 인터넷 접속을 못했습니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 수록(?) 무엇이든 사라지는 것들이 하나씩 아쉬워지는거 같습니다^^

      • 저희도 이제 나이 얘기를 하는 세대가 된 듯합니다. 같이 진지하게 토로해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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