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하기의 개념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과 형식주의의 중심 개념 중의 하나다. 형식주의의 중요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던 빅토르 스클로프스키는 그의 글 「과정으로서의 예술(Art as Process)」(1916)에서 “예술의 목적은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봄으로써 대상의 감각을 전하는 것이다. 예술의 과정은 버성김과 소외의 과정이다. 예술에 있어서의 지각 과정은 그것 자체로서 목적이며 동시에 지속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우룡 엮음, 《사진과 텍스트》. 눈빛출판사. 2011. 74쪽.

요즘 공부하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미술사입니다. 그러니까 특정 시대에 굵직한 상황과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는 셈이죠. 책 제목이 《1900년 이후의 미술사》이니 당연한 얘기겠지만, 사진을 살펴보기 위해 읽고 있어 마음은 딴 곳에 있습니다. 콩밭에서 팥을 찾는 심정이랄까요? 헌데, 팥도 콩과에 속하니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낯설게 하기’는 책의 서론을 공부하며 한번 언급한 기억이 나는데 다시 한 번 살펴봅니다. 롤랑 바르트는 이것은 ‘스투디움’이라고 말했고, 보통 문화나 관습, 그러니까 선입견으로 말해지기도 합니다. 이것을 한번 벗어나보자는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 형식주의는 결국 널리 알려지고 익숙해진 아우라를 벗기는 시도입니다. 그 일례로 알렉산드로 로드첸코의 사진 촬영 기법을 살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식상한 촬영 방식일지 모르겠지만, 그는 대상을 위나 아래에서 촬영하거나 근접 촬영하여 대상 자체를 돋보이게 했습니다. 이런 촬영 방식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넓은 시야보다는 좁은 시야로 보는 사물, 정면을 거부하는 사진 시각은 일단, 낯설게 하는 방식이고 그런 의미에서 대상에 집중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합니다. 흔히 보던 사물도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다면 다시 보게 되는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용한 글에 인식 얘기가 있어 간략하게 한 말씀 덧붙여봅니다. 인식이라는 것이 외부세계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대체로 인간은 그것을 알기 위해 그러니까 지각을 위해 감각을 이용합니다. 그러다가 감각이라는 것이 인간마다 달라 판단 기준이 되지 않으니 감각 기관을 통해 산출된 관념으로 외부세계를 지각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관념을 모아 다른 관념을 만드는 것을 지성이라고 하고, 이렇게 걸러진 것이 지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얘기가 있지만, 머리가 복잡하니 이 정도로 정리를 하고 인용 글을 다시 살펴봅니다. 결국, 스클로프스키가 말한 것은 이런 인식의 틀을 벗어버리고 객관적으로 그것 그대로 살펴보자는 얘기입니다. 로드첸코는 낯설기 하기 방식으로 대상을 그것 그대로 보려 노력했었고 말이죠. 다른 말로 지식이라 할 수 있는 작가는 사라지고 대상만 남는다고 말할 수 있겠군요. 이렇게 되면 대상 스스로 말을 걸어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