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후의 미술사: 기계 복제 시대에 상실된 아우라를 사진 매체를 통해 극복하려 했던 앙드레 말로

오늘은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 19세기 후반 스위스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이 말한 “어떤 대상을 미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의미의 문제가 된다.”〔298〕라는 말을 풀어보려 합니다. 사실,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발터 벤야민이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1935)에서 언급한 복제 방식을 통한 정치적 생산 논의와 페르디낭 드 소쉬르가 말한 의미는 관계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기호학에서는 이것을 기호들 간의 가치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적어 놓은 것을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André Malraux, 1901-1976)가 이해하기 쉽게 일례를 들었습니다. “그리스 조각의 위대함을 이해하려면 수백의 그리스 조각들을 보느니 차라리 그것을 이집트나 아시아의 조각과 비교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298〕 사실, 예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예를 생각해 볼까 싶었지만, 책의 성격이나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인용해봅니다.

앙드레 말로의 『벽 없는 미술관』을 위한 사진 도판들, 1950년경

벤야민은 기계 복제를 통해 진품성, 즉 원작의 고유한 속성을 잃어버리게 된다고 했고, 말로 또한 이와 같았습니다. 다만, 벤야민은 진품성의 상실로 인해 동등함, 정치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고, 말로는 상실로 인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양식, 그러니까 새로운 미학의 양식으로 동질화를 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제가 읽고 있는 미술사도 어찌 보면 말로가 얘기한 미술책(art book)의 한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 물리적인 대상과 마주할 수 없지만 사진 이미지를 통해 가상으로 대상과 마주하고 있으니 말이죠.

음, 방금 기억난 것인데, 며칠 전에 생각한 겁니다만, 전 파리에 있는 에펠탑을 실제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세부적인 모습까지는 모르더라도 말이죠. 이런 경험은 역시 인터넷을 통해 에펠탑 이미지를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에서 돈이 떨어져 파리를 가게 되고 실제 에펠탑을 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실현 가능성이 없어 시무룩하지만 애써 상상해봅니다.

아마도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 대상을 물리적으로 마주하고 있으니 진품에서 느껴지는 그 어떤 것이 있겠죠.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가상으로 봤던 에펠탑과 실제 본 에펠탑의 간극은 분명이 있겠지만, 시각적 인상은 둔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이 간극을 사진 매체를 통해 작품을 파편화하고 고립시켜 생산된 의미로 메우려했던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미술책의 수많은 의미들.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것이 사진이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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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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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6

      • 안녕하세요. 우연히 포스팅을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부산에서 포토부산이라는 그룹에서 사진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본업이 따로 있어서 작성하신 포스팅들을 천천히 읽어보고 싶네요.

      • 들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종종 들러서 좋은 말씀 혹은 질문 부탁드립니다. ^^

      • 에펠탑을 보기 위해 에펠탑에 가는 것이 아니라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에펠탑을 찾아 가는 이미지 역전 현상이군요.

        실제 사물과의 체현 가치보다는 이미지를 통한 공유 가치가 앞서게 되는... ^^

      • 아무래도 그런 성격이 큽니다. 도대체 국내에서 사진이 가지는 의미 또는 가치는 무엇일까 궁금하기 그지없습니다. 왜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싶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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