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후의 미술사: 텅 빔, 무표정, 중성을 드러내는 반모더니즘

토마스 스트루트, 〈뉴욕 소호 크로스비 거리〉, 1978년

스트루트와 루프의 초기 작업이 물질적인 지지체로서나 장인적 기술의 수단으로서나 시대에 뒤처진 흑백사진을 고수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조르조 데 키리코의 회화에서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반(反)모더니즘적 충동이 여기에서도 작동하는지, 작동한다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여기서 반(反)모더니즘이란 현재를 멜랑콜리아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고, 선진 과학 기술의 생산 수단과 필연적인 관계를 설정하는 아방가르드 모델과 단절하며, 상실의 조건에서 어떻게 기억을 재구성하는가와 같이 전후 시기의 중대한 질문을 배경으로 자신의 위치를 정하는 것을 뜻한다.

《1900년 이후의 미술사》. 세미콜론. 2012. 569쪽.

토마스 스트루트(Thomas Struth, 1954~)와 토마스 루프(Thomas Ruff, 1958~)는 베른트 베허 유파에 속하는 2세대 사진작가이다. 베허 부부는 「냉각탑」(1993)과 「8개의 시점에서 바라본 집」(1962~1971)을 각각 유형학 방식과 펼침 방식으로 제시했다. 서로 다르지만 모습이 유사한 건축물 이미지 「냉각탑」과 하나의 건축물을 여러 각도에서 나열한 이미지 「8개의 시점에서 바라본 집」은 사라져가는 산업 건축물을 사진으로 기록해 영구화하려는 의지와 함께 실제 대상이 사라짐을 막을 수 없음을 자각할 때 무력감에 빠진다.

베허 부부, 《익명적 조각들: 건설 기술의 유형학》(1970)

스트루트의 「런던 클린턴 거리」(1977)는 사람이 없는 텅 빈 거리, 그 자체이다.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대신 사람이 그들이 만든 도시로 환원되는 듯하다. 이런 맥락에서 베허 부부의 동일해 보이나, “벨기에, 독일,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부터 도쿄와 같은 대도시까지 끊임없이 방황하면서 독특한 유형의 도시 공공장소를 기록”〔569〕했다는 점에서 다르다. 결국 그의 사진은 순수한 산업 건축물의 이미지로 보이지만, 프레임 밖에 존재하는 사진가의 경험이 묻어난 도시 공간 기록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앞서 언급된 “상실의 조건에서 어떻게 기억을 재구성하는가”를 생각하던 중 포토넷 객원기자, 이기원의 블로그에서 흥미로운 인터뷰를 접했다. 석정 작가의 이번 작업이 공간과 인물을 기록한 기념사진이라 할 수 있는데 다음은 이기원이 석정 작가와 인터뷰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이번 전시를 위해 잠시 어르신들의 과거 사진을 빌리면서, 내가 직접 스캔하고 포토샵으로 복원해 새로 뽑아 갖다드렸다.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더라. 당신께는 정말이지 너무나 소중한 사진들인데 이게 점점 낡아가는 게 마음 아프셨다면서.

이기. “변두리 이웃의 풍경과 숨은 이야기 - 석정 <이천, 강을 건너온 사람들>”. salon de iggy. 2015.4.30.

사진에 시간이 퇴적되면 어떤 사진이라도 알 수 없는 의미가 쌓여간다고 생각했는데, 인터뷰 글을 읽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생각했던 퇴적은 '물질적 퇴색'이었고 이제는 '기억-망각'의 순환 작용이 오래된 사진의 의미가 아닌가 싶다. 이런 맥락에서 스트루트와 더불어 루프의 「초상」(1989) 작업은 텅 빔, 무표정, 중성을 드러내며, 기억과 망각을 오고가는 그 사이에 놓여있다. 또한 기억과 상실, 즉 ‘기억-망각’의 반대편에는 ‘죽음-사라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결국 사진에 순간 포착으로 붙들어 놓은 것은 죽음 또는 사라짐인데 사진을 보는 그 순간에 따라 죽음과 사라짐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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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4

      •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 서술하고 있는 반모더니즘은, 기존 그린버그 미학이 추구해 왔던 예술의 "순수 조형성"에 대해 반하여 회화와 사람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예술을 했다는 의미로 읽혀지는데, 실제 작가들의 사진은 이미 외젠느 아제가 구축해 왔던 형식을 반복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 그린버그를 자주 언급하시니, 제가 관련한 책을 한 권 읽어봐야겠습니다. 혹시 추천해 주실 책이 있나요? 여하튼, 그린버그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명하며 사회와 단절된 형식주의, 그러니까 모더니즘을 추구하면서 종국에는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그것을 돌파하고자 했던 당대 시도가 개념주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에 공부한 내용은 1968년이지만, 말미에 보면 1984년 사진개념주의로 이어집니다. 베허 부부도 그렇고 스트루트와 루프 등은 인간 개입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습니다. 물론, 스트루트는 이후 색채사진 도입과 미술관과 가족을 주제로 작업을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사진에서 그의 이데올로기가 느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앗제의 사진은 흔히 초현실주의 사진으로 분류되는데, 그의 사진을 보면 묘합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생각되지만, 종국에는 그렇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현실에 근거를 두고 있어도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 같다고 해야겠군요. 더불어 아카이브 사진으로 분류되는데 하나의 주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료로서 촬영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반복되고 있다는 말씀은 유형학 방식을 의미하고 있는 듯합니다. 당대의 작업에서 형식이나 방법론은 기존 것을 참고하여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 저는 그린버그를 진중권 교수의 개설서에서 본 이후로 따로 본 것은 없네요. ^^; 저는 뭔가 실용주의자의 성격인지 몰라도 '목적 없이 거기에 있음'이라는 생각이 그다지 와닿지 않아서 깊게 파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 사르트르는 목적이란 말조차 없는 '거기 있음'을 언급했죠. ‘실존이 본질보다 앞선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여하튼, 그린버그야 종종 책에서 언급되니 앞으로 더 만날 기회가 있겠죠. 책에 온통 ~주의가 등장해서 이참에 가벼운 총서를 각각 하나씩 읽어볼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입한 것이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입니다. ^^;;

        앞으로 이런 책을 좀 구입해서 생각 정리를 좀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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