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방: 16(욕망을 불어넣기)

내가 살고 싶은 곳은 바로 ‘그곳’이다.

나에게 있어서 풍경사진은 (도시건 시골이건) 그곳을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 이 거주의 욕망을 잘 관찰해 보면, 몽환적인 것도(나는 기상천외의 장소를 꿈꾸지는 않는다.) 경험적인 것도 아니다. (나는 부동산업자의 광고를 보고 집을 사려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환상적이며 나를 앞으로, 유토피아적인 시간 속으로 데려가는 듯한, 혹은 한없이 뒤로 데려가는 듯이 보이는 일종의 투시력(yoyance)에 속한다. 그러나 내 자신도 그곳이 구체적으로 어딘지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보들레르가 〈여행에의 초대〉와 〈전생(前生)〉에서 노래한 이중의 움직임이다. 이 열애의 감정이 솟는 풍경 앞에서 마치 나는 그곳에 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혹은 가게 될 것을 확신하게 된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44쪽

다른 얘기지만, 요즘 먹방이 인기니 그것과 연결해 생각해봅니다. ‘미슐랭 별’의 의미는 멀리서 찾아올 가치가 있거나 오직 그것만을 먹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여행을 할 가치가 포함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르트는 좀 다른 생각을 하는군요. 먹는 것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요리도 해야 진정한 먹방이라고요.

비약이 심하지만, 바르트가 생각하는 풍경사진은 잠시 들러(늘 돌아갈 곳이 있는 상태에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은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풍경사진이 일으키는 욕망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것이 아닌 현재와 관련된 것입니다.

사진은 늘 노스탤지어와 유토피아의 시간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며 혼란스럽게 합니다. 이 점이 바르트가 말하는 사진의 위험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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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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