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론, 우리가 정말로 세계를 알 수 있을까?

황설중, 『인식론』, 민음인, 2009

인식에 대해 궁금증은 아마도 사진에 관한 탐구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보기 좋은 사진을 촬영한다’는 기술적 접근도 중요했지만 '내가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여 촬영했는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그 사실은 내가 블로그에 올리는 사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도대체 난 무엇을 보면서 촬영했던가. 내 앞에 놓여있는 사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했는가. 정말로 해석은 했을까?

이런 나의 끊임없는 질문은 ‘인식’을 검색하게 되었고 결국 하나의 책을 발견한다. 물론, 그 전에 다수의 인식론 정의와 철학적 분류를 살펴보았기 때문에 쉽게 이 책을 선택할 수 있었다.

늘 그렇지만 철학 서적은 어렵다. 인식론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그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지만 쉽게 책 장을 넘기기는 어려운 현실이 참담했다.

황설중의 『인식론』 초입부는 갈망하는 나의 심정을 아는 듯 아이를 달래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주변에서 쉽게 대면할 수 있는 상황으로 독자와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또는 과감하게 이어지는 수많은 질문, 끊임없는 질문을 쏟아낸다.

당황스럽고 황당한 그의 질문에 머리가 어지럽다. 때로는 혼란스러우며 책을 덮기도 한다. 궁금증에 다시 책을 펼치지만 몇 번의 시도가 참혹하게 실패로 돌아온다.

어떤 질문이 이토록 나를 줏대 없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바보로 만들었는가?

“내가 악마에게 속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있을까?”
“알 수 없기 때문에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인식론적 물음에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있을까?”

이쯤 되면 나를 책망하기 시작한다. 왜 쓸데없는 인식이라는 요망한 것에 홀려 이토록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는가 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따뜻한 차 한잔과 함께 편안하게 “공자 왈, 맹자 왈”을 외치고 있지 않았겠는가.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나를 바라보기라도 하듯 마지막 책장에서 저자는 위로의 말을 던진다. 지금까지 고민했던 말장난과 같은 수많은 질문이 모두 헛되지는 않다고 나를 달랜다.

나를 알기 위해서라도 고통스럽게 나아갔던 그 끊임없는 질문에 답을 구하라 말한다. 황설중의 말을 인용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개안(開眼)’이라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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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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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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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즘, 예전에 적은 글을 옮기고 있습니다. 대략 2013년도에 티스토리에 작성했던 글인데 네이버로 잠시 옮기면서 사라졌던 글이예요. 지금은 둘 다 없어졌지만, 다행스럽게도 글은 저장해 놓았더군요.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게 또 '내'가 아닐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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