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라시옹, 홀로코스트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하태환 옮김, 민음사, 2001

보드리야르가 역사 사건의 부활에 영화보다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차가운 중간매체, 즉 텔레비전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유대인 학살 장면을 방영한 TV 프로, 「홀로코스트」를 제시한다.

역사의 학살 사건이었던 홀로코스트가 아닌 시뮬라크르의 홀로코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망각과 기억 사이의 관계’의 이해가 선제 되야 할 듯하다. 역주를 옮겨보면 “들뢰즈 식으로 추론해 보겠습니다. 만약 기억이 영구히 기억으로 남아 있다면 영원히 망각이란 없을 것이고 망각이 없으면 기억도 없을 것이다.”라고 그 관계를 풀어놓았다. 망각의 측면에서 봐도 같다. 영구한 망각이 있다면 기억은 존재할 수 없다는 논리다. “기억과 망각은 같은 것의 서로 다른 모습일 따름이다.”

망각과 기억 사이의 관계를 이해했으니, 이제 시뮬라크르 측면에서 홀로코스트의 텔레비전 방영이 그토록 심각한 문제인지 이해해볼 차례이다. 과거의 큰 사건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된다는 것은 잊힌(차가운 시체, 망각) 역사의 기억을 되살린다는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은 인위적 기억이며 차가운 시체, 즉 망각을 지워버린다.

보드리야르는 텔레비전의 이미지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단정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이 화면이고, 텔레비전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테이프이지 이미지가 아니다.”

문득, 텔레비전에서 들은 이런 말이 떠오른다. “사실, TV가 한 사람 손에 놀아나고 있으므로 결국 그의 말이 곧 진실이 되는 것이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방송 3사,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한 사람 손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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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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