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완네 집 쪽으로: 바니시 냄새

마르셀 프루스트, 「스완네 집 쪽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2

조금씩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을 읽고 있습니다. 정말 온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한 장도 채 읽기 어렵더군요. 그런데 재미있습니다. 줄다리기를 한다고 할까요? 줄타기일 수 있겠네요. 같이하거나 혼자하거나 그런 차이겠죠. 로쟈 님이 쓰는 《로쟈의 저공비행 (로쟈 서재)》에서 프루스트 책 얘기를 읽었습니다. 제목에 엄청 공감했습니다. “잃어버린 표지를 찾아서” 왜 공감을 했냐면, 민음사가 출판한 책 표지, 그러니까 두툼하고 감성이 듬뿍 담긴 표지를 보고 ‘이건 꼭 사야겠다’ 싶었거든요. 그 얘기를 하시더군요. 게다가 다른 출판사 얘기도 있는데 처음엔 두툼한 표지를 쓰다가 일반 표지로 출판되어 아쉬운 마음을 제목에 담았나 봅니다. 로쟈 님 말씀처럼 민음사는 꼭, 반드시, 계속, 지금처럼 다른 의미로 소장할 수 있는 책을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두툼하고 감성이 넘치는 표지를 보고 책을 샀는데, 처음엔 읽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이건 제 탓일 거예요. 너무 이성에 따른 책만 읽다 보니 도통 읽을 수 없었어요. 몇 번 읽기를 실패하니 오기가 생기더군요.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에 읽은 『이미지의 운명』(자크 랑시에르)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책도 감성보다는 이성을 따른 책이지만, 이미 읽었던 책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어쨌든, 이제야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내가 언제나 슬픈 마음으로 올라가는 이 가증스러운 계단에서는 바니시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내가 매일 저녁마다 느끼는 그 특별한 슬픔을 흡수하고 고정해, 이런 후각적인 것에 대해 별 볼일 없는 내 지성보다는 내 감성에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고향을 참으로 찾는 것은 기억이 아니라 후각이라고 했죠. ‘나’(책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인공)는 바니시 냄새를 맡으면 매일 느끼는 슬픔보다 더 고통을 느낍니다. 왜 그런 경험이 있잖아요? 어떤 냄새를 맡으면 고통이 떠오를 때. 괜스레 눈물이 흐를 때.

이런 문장이 길게 늘어집니다. 계속 이어져요. 그래서 줄다리기 혹은 줄타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끌려가거나 떨어지게 됩니다.


* 마르셀 프루스트, 「스완네 집 쪽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김희영 옮김, 민음사, 2012, 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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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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