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철학: 가로등

함돈균은 “가로등은 가늘고 긴 몸통 위에 빛이 발산되는 머리가 아래쪽으로 구부러진 형상이다. 굽어보는 빛이 낮은 자리로 발산되어 주위를 평등하고 넓게 비춘다.”*고 말했지만 나는 가로등을 보면 ‘소외’가 떠오른다. 내게 있어 가로등은 차도 곳곳에 있는 그것이다. 낮 동안 자동차로 숨겨진 차도는 밤 동안 가로등 빛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아마도 차도의 존재를 진정 알 수 있는 때는 가로등이 존재를 드러내는 밤일게다.

낮 동안 비추는 빛으로 본 차도는 그다지 넓지 않게 느낀다. 버스를 타거나 자동차로 이동하는 동안 좀 더 차도가 넓으면 빨리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행여나 공사로 차도가 막히면 우회할 도로를 찾게 된다. 그 선택 폭이 적으면 더 많은 차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밤 동안 비추는 가로등으로 본 차도는 그렇게 넓게 보이니 이상한 일이다. 당연한가? 활동이 적은 밤에는 차도를 점유했던 모든 것이 어딘가 정박하고 있기 때문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우리가 차도를 대하는 인식은 이렇게 낮과 밤 동안 다르게 작동한다.

낮 동안 차도 옆으로 걷는 행위는 어떨까? 그러니까 사람만이 다니는 길을 걷는 동안 자동차는 차도로 사람은 인도로 다니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제 밤이 찾아오고 가로등에 불이 들어온다. 서서히 드러나는 차도와 인도의 존재. 차도가 넓게 보이는 당연한 결과와 마찬가지로 이제 인도도 넓게 보일까? 그렇지는 않다. 가끔 차 없는 거리를 만끽할 수 있는 날이 있다. 차도 중앙선을 걸어봄을 실현할 수 있는 날이다. 이 얼마나 짜릿한 순간인가. 난 이 감정이 (비록 허용된 범위 안일지라도) 일탈을 경험했기 때문에 느꼈다기보다 소외된 존재가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함돈균, 『사물의 철학』, 세종서적, 2015,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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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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