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2호: 출발선의 의미는 없다. 이미 누군가는 앞서 있다.

줄리앙 브리고는 “미국 내 홈스쿨링 교육의 확산”(르몽드 디플로마티크, 62호)에서 불평등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 향상이지만, 반대로 불평등을 조장하는 것도 교육이라 말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바로 능력주의다.

그가 말하는 교육은 능력주의에 기반을 둔 학교교육제도다. 능력주의는 곧 무한경쟁을 의미한다. 무한경쟁에 밀려난 한 중학생은 자퇴, 엄밀히 말하면 정원 외 관리를 희망한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고민을 묻는다. 또래 학생 혹은 비슷한 경험을 한 선배들은 대부분 후회하지 말고 버텨보라고 한다.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라는 충고도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내 진심을 몰라주는 대답만 있을까?

대부분 그렇다고 말할 순 없지만, 고민을 묻던 중학생은 교육제도에 문제점을 느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걸 말로 설명하기 힘들 뿐이다. 혹시 내가 문제가 있는 것인지, 내가 왜 이렇게 남과 다른지, 부모님은 왜 이렇게 이해를 못해주는지, 또래 친구는 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자신도 모르고 듣는 이도 모르는 상황이다.

획일교육은 늘 문제로 인식됐고 해결책으로 개성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도 있다. 가끔 미디어를 통해 개성교육을 실시하는 학교가 소개된다. 저런 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힘들뿐더러 모든 곳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된다.

그 대안으로 국가에서 지정한 대안학교가 있지만, 기존 시스템을 조금 변형해 놓았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때문에 교육제도에 불안감을 느낀 학생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른 대안으로 국가가 인정하지 않지만 교육체계를 갖춘 대안학교도 있다. 다만, 그 수가 적거나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선택을 망설인다. 결국 홈스쿨링뿐인데 부모가 남다른 각오가 있지 않고선 실행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어떤 선택을 하던, 사회에서 소외되어 낙오자가 될 거라는 인식 탓에 두렵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제시할 수 있다. 낙오자라는 딱지는 누가 지정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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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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