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과 수영을 함께 한지 한 달이 지났다.

R과 수영을 함께 한 것이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아쉽게도 R은 일반인과 달리 강습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수영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R이 몇 번 강습을 빼먹긴 했지만 잘 따라와 준 것만도 고마운 일이긴 하다.

대게 뭔가를 배움에 잘 배울 수 있는 비결은 다른 것이 없다. 꾸준하게 다니며 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온전히 배움 속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법도 알 수 있다. R은 아직 그것을 깨닫지 못했는데 그런 날이 올 수 있길 바랄 뿐이다.

한 달 강습 결과는 아쉽게도 성적이 좋지 않다. 다른 이들과 달리 R은 아직 발차기를 하지 못한다. 수면에 떠 있을 수 있게 된 것도 최근 일이다.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발차기도 함께 해야 하는데 R은 발차기를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글 시대, 그러니까 책을 통해 배우던 시대는 흔히 청각시대라고 한다. 왜 시각이 아닌 청각인지는 학창시절 수업을 상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물론, 요즘과 같이 시청각 수업이 아닌 온전히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와 책만 있던 시절이다. 가르치는 자는 말로써 책 내용을 설명하고 배우는 자는 가르치는 자의 말을 듣고 책 내용을 이해했다. 그런데 이제 시대가 변했다.

아마도 R은 책보다는 영상을 통해 수영을 배우는 게 더 이해가 빠를지 모른다. S만 해도 큐브 맞추기를 배우기 위해 동봉된 안내서보다 유튜브 영상을 검색한다. 내가 안내서를 더 선호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뿐만 아니라 유튜브 영상을 보고 단 하루 만에 큐브 맞추기를 완벽하게 하는 S를 보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나는 여전히 반들거리는 안내서만 매만지고 있다.

S와 같이 영상에 익숙한 R은 아직 유튜브에서 수영 영상을 검색하지 않는다. 아마도 R은 여전히 수영을 마지못해 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R이 수영 영상을 검색하고 머릿속으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강습을 즐겁게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고 또 바란다. 나와 M에게 수영은 단지 운동의 의미가 아닌 어떤 것을 스스로 적응하고 극복하는 하나의 수단이자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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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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