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1호: 맞춤법 검사에 ‘세월호’ 단어를 추가했다.

문서편집기에 ‘세월호’를 입력하면 수정해야할 단어라며 빨간 밑줄이 표시된다. 뭘 수정하라는 거지? 넌 세월호도 모르니? 참 답답한 녀석이군. 맞춤법 검사/교정에 새 단어를 추가한다. 이제 문서편집기도 세월호를 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답답한 녀석이다. 2주년이 돼서야 이런 생각을 했으니.

세월호 참사 2주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적어도 내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조금씩 그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안산에서 만난 고등학생들. 친구들의 죽음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감응한 이들이다. 이들에게도 여전히 사회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 이상엽, “국가가 삼킨 세월호 참사 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6년 4월호

“끝까지 밝혀줄게”

이렇게 하면 금세 뭔가 변할 줄 알았다. 실체 없는 국가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대변하는 누군가가 진상을 밝히고 억울한 죽음을 위로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참 순진한 생각이고 짧은 생각이란 걸 세월호 참사 2주년이 돼서야 알게 됐다. 정확하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실린 이상엽의 <국가가 삼킨 세월호 참사 2년>을 보고나서였다.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될 때 금방은 아니라도 조금씩 진상이 밝혀지고 조금씩 세상이 변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작은 희망은 여지없이 수장되고 무엇 하나 밝혀진 것이 없이 흐지부지되었다. 절망이면 절망이고 자포자기면 자포자기인 상태에서 세월호 참사로 또래 죽음을 가장 억울해하고 공감할 이들이 들고 있는 피켓을 보니 그동안 내가 단단히 잘못된 생각을 한 것 아닌가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금세 바뀐다면 그것은 또다시 금세 바뀔 것이다. “끝까지 밝혀줄게”라는 피켓을 든 안산에서 만난 고등학생들뿐만 아니라 같은 또래들이 끝까지 그 의지를 버리지 않는다면 절망하거나 포기해야만 하는 억울한 상황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나 또한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절망하거나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국가나 그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제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의지를 지속할 수 있을 것만 같다. 함께 한다는 것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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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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