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과 20대 총선 개표 방송을 함께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2012년 4월에 있었던 19대 총선과 같은 해 12월 있었던 18대 대선 땐 M과 함께 했는데 이제는 R도 함께했다. 물론, 투표권이 없는 R이지만 개표 방송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태양의 후예> 탓에 잠깐 맥이 끊겼다. 어쩔 수 없었다. 나와 M은 송혜교의 눈물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마지막 회를 기다리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나에게 R은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20대 총선 개표 결과였다. 처음엔 여당이 한 석 더 차지한 것으로 보고 야당이 선전했구나 싶었다. 그런데 잘못 본 것이었다. 다시 보니 한 석 앞선 게 아닌가. 꽤 오랫동안 앞자리는 여당 자리였는데 착각할만했다.

요즘 정치는 꽤 흥미롭다. 경직보다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즐거움은 바르트식 즐김으로 확장될 수 있다. 바르트는 『텍스트의 즐거움』에서 텍스트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은 정치적 소외가 문제된다고 말한다. “한편에는 진부한 다수, 다른 한편에는 준엄한 소수(정치적인 또/혹은 과학적인)라는 두 개의 도덕관이 작용하는 사회에서는 즐거움(더욱이 즐김)이 배제된다. 즐거움이라는 상념은 더 이상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사회는 냉정하고 동시에 과격해 보인다. 여하간 그것은 경직되어 있다.”

여전히 정치얘기를 하면 분위기는 경직된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R과 M과 함께하면서 어떤 즐거움을 느꼈다. 만약 R이 투표하는 날이 오거나 S도 함께하는 날이 온다면 즐거움이 더욱 확장되어 즐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트위터에 이번 20대 총선 개표 결과를 보고 한 줄 평을 적어 봤다. “잘해서 투표하는 게 아니고 잘 듣고 잘해달라고 투표하는 것. 이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정말 이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즐김 속엔 기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통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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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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