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방: 25(어느 날 저녁)

오랜만에 읽는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 무슨 이유인지 감회가 새롭다. 방금 트위터에 짧은 글을 하나 올렸다. 월간 사진 잡지 <포토닷>에 대한 얘기지만 새로움을 느낀 지금 감정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포토닷 4월호가 오면 '사진을 본다'는 것과 '사진을 읽는다'는 것, 이 두 가지 관점에서 포토닷을 보고, 읽을 생각이다. 늘 그랬지만, 난 사진을 본다는 것과 읽는다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번 호는 그런 점에 상당히 부합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몇 개월이 지나 읽는 밝은 방을 2부는 잔잔하다. 바르트의 목소리가 이토록 차분했던가? 다른 책에서 읽은 얘기인데 바르트는 꽤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강인함과 유연함이 공존한다고 한다. 그런 목소리는 대체 무엇일까? 2부에서 들려주는 목소리는 후자 쪽에 가깝다.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시작한 탓인지 잔잔하면서도 특유의 번뜩임이 조금 묻어난 목소리다.

바르트는 어머니의 사진을 통해서 어머니를 ‘되찾기’를 기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가 본 사진은 그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머니다. 그러니까 그가 존재하지 않을 때 어머니이다. 다음 장에서 언급되지만, 그는 이것을 ‘역사’라고 말한다. 그의 말따나 역사는 산 사람이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사진을 본다는 것은 읽는 것과는 정반대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카메라에 찍힌 사과를 본다는 것은 그 둥근 형체를 보거나 빨간 혹은 녹색에 감응하는 것이다. 껍질에서 반점을 찾거나 햇빛에 반사된 한 점을 찾는 것이다. 한 입 베어 물으면 청량한 소리가 날 것만 같은 매끈함. 힘껏 손으로 돌려 만지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만 같은 짜릿함. 그러나 이것은 역사와는 상관이 없다. “내가 그 사진들을 내 친구들에게 보여주게 된다고 하더라도, 사진이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는 바르트의 말을 난 이렇게 받아들였다.


*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68쪽

신고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이미지 맵

    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