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사감을 만난 운수 좋은 날

오랜만에 외출은 지인의 뜻하지 않은 약속 때문이었다. 가볍게 차 한 잔 하자는 말이 B사감을 만나게 된 운수 좋은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B사감은 현진건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여자기숙학교 기숙사 사감이다. 그녀는 못 생겼다고 하던데 만나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 마디로 핑크빛이다. 프리즘에 다른 빛은 없고 온통 핑크빛만 존재한다고 할까.

인천 중구에 있는 한국근대문학관에서 7월 3일까지 <앵글에 담긴 근현대 한국문학 - 윤정미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처음엔 그가 누군가 싶었는데 전시장에 비치된 <핑크 & 블루 프로젝트> 팸플릿을 보고 이 사람이 사진 잡지에서 봤던 그 사람이구나 싶었다. 사진의 매력은 역시 시각적으로 확연히 드러남에 있는데 <핑크 & 블루 프로젝트>을 봤을 때 정말 충격이 컸다. 여자는 핑크, 남자는 블루로 각인되는 현상을 사진으로 직접 목격하니 그 스케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전시는 “사진과 한국 근대소설의 만남”이다. 사진에 등장한 인물들은 모두 한국 근대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표현하고 있다. 대부분 익히 아는 근대소설인데 내가 읽었던 것은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와 역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다. 그나마 읽었던 작품이 있어 사진에 표현된 장면을 감상하는데 흥미로웠다.

앞서 본 <B사감과 러브레터>와 달리 <운수 좋은 날>은 정반대의 분위기이다. 웃는 것도 아니고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이 압권이다.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은 마지막에 아내가 죽는 것으로 기억이 나는데 정확히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사진만으로는 연상되지 않아 비치된 책을 살펴봤다.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그래, 그랬었지. 난 B사감을 만난 운수 좋은 날이었는데 사진 속 인물의 묘한 표정 탓인지 불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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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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