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그 92호: 투명한 거리 이름들

르몽드 디플로마티그, “파리의 정치적인 거리 이름들”에 소개된 '슈발리에들라바르(Chevalier de la Barre;바르의 수호자)'란 거리가 있는지 Google Map에서 검색하니 쉽게 검색된다. 이 거리명은 1870년대 프랑스 제3공화국 때 생겼고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Descente de la rue du Chevalier de la Barre. 2011. © franciscojgonzalez. https://www.flickr.com/photos/franciscojgonzalez/

기사를 읽고 국내 도로명이 떠올랐다. 말 많았던 도로명 일제 정비 얘기는 잠잠해진 상태다. 나는 이 사태가 다른 사태에 묻혔을 것이고 아직 진행 중 일거라 믿는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도로명은 ‘장제로’이다. 옛 명칭인 ‘장제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장제군은 또 어디서 왔을까?

장제군(長堤郡)은 무려 통일신라 때 지명이다. 약 700년 때 얘기다. 대단하다! 과연 이런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알더라도 다른 의미에서 대단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뚝 끊어진, 의식의 문제이다.

도시에서 마을은 이미 그 고유의 색이 사라진지 오래다. 도시에 마을이란 단어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송월동 동화마을’만 해도 ‘송월동’ 동화마을보단 송월동 ‘동화마을’의 의미를 강조한다. 지명은 이제 어떤 길을 찾아가야할 식별자일뿐 다른 의미를 내포하지 못한다.

꼭, 지명이나 도로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야 할까? 이런 생각마저 든다. 그러니까 의미는 다를지라도 대부분 그 의미를 알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그런 의미가 필요할까? 무언가를 호명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제각각 의미가 생긴다. 누군가 이것은 이것을 뜻한다고 말해도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의미는 사라진다.

그러나 의미는 권력을 가진 집단이나 여론에 의해 쉽게 조정되며 마치 자의적으로 발생한 것처럼 착각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라면, 의미는 다양할 수밖에 없지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거리명은 결코 자의적일 수 없다. 사실, 원주민이 부르는 거리명을 제외하면 각종 문서에 실리는 거리명은 표준화 정책에 따른 결과물이다.

“우리는 이들 망나니들의 이름 대신, 파리 지도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성녀와 수녀들의 이름을 도로명으로 올릴 수도 있다. 우리들 자신이 원한다면 말이다. 거기에다 낭만적인 이름들, 가령 발자크의 작품 <인간희극> 속의 야심찬 주인공 뤼시엥 드 뤼방프레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 샤를 스완의 이름도 추가했으면 좋겠다. 이들의 이름이 부르주아적·학술적인 낡은 예찬에 이용되고 있는 도로명보다 훨씬 확실한 명분을 갖췄기 때문이다.”

에릭 아장, “파리의 정치적인 거리 이름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2호

에릭은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을 도로명에 추가하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불투명한 도로명보단 투명한 도로명으로 거듭 날거라 믿고 있다.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이다. 지역 이기주의나 특정한 권력을 예찬하는 것보다 사람 내음 나는 얘기가 더 명분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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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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