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방: 26(분리로써의 역사)

바르트는 옛 사진들을 정리하며 어머니를 회상한다. 물론, 결코 떠올릴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사진 속 어머니는 그가 알고 있는 어머니가 아니며 결코 알 수 도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바르트가 포착한 어머니의 모습은 ‘역사’ 안에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역사는 “우리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기간”*을 뜻한다.

그는 그가 태어나기 전 그의 어머니의 모습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역사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포착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장식구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주의력은 어머니로부터, 지금은 사라져 버린 장신구로 옮겨간다. 옷의 유행이란 결국 사라지게 마련이어서,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2의 무덤을 만들어 준다.”** 그렇다. 우리가 고인을 떠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살아생전 몸에 걸친 장식구나 옷 등이다.

페이스 오브 러브 (2013) 출처: 다음 무비

변광배의 《존재의 무》 강해에 이와 같은 말이 있다. “사르트르는 주인이 부재중인 객실에서 내가 주인을 기다리는 중에 주인(이름을 피에르(Pierre)라고 하자)이 나타나는 장면의 예를 들고 있다. 사실 피에르의 부재중에도 객실에 있는 도구, 사물들은 (안락의자, 책상, 책 등) 그의 신체를 계속해서 나에게 지시해 주고 있다.”*** 이렇게 보면 고인의 유품을 태우는 의식은 남아있는 우리가 이별의 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의식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고인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살아생전의 모습이다. 바르트의 식으로 말하면, 나 자신으로부터의 출발이다. 그러나 역사, 즉 우리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기간에 살았던 고인을 얘기하는 것 또는 포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르트는 책 말미에 어머니의 진정한 모습을 봤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68쪽
** 앞의 책, 68쪽
*** 변광배, 『존재와 무』, 살림, 2005,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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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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