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텍스트' 노동으로써의 편지, 그림엽서 그리고 전보

편지

지금 내가 써내려가는 하얀 공책처럼 편지지에 손 글씨로 써내려간 글은 편지를 받는 이(수신자)를 위한, 수신자만을 위한 말의 흔적이다. 수신자는 편지에 적힌 글씨를 통해 글을 쓴 이(발신자)를 떠올린다. 선명하지는 않겠지만, 수신자는 마지막으로 봤던 발신자의 모습을 떠올리며 편지를 읽는다. 수신자는 발신자가 그의 손으로 쓴 글 표면의 굴곡을 따라 발신자를 만난다. 편지는 단지 말의 흔적이기 보다는 발신자의 신체이자 곧 그 자체를 엿볼 수 있는 매개이다.

전보(1830년대)

전보는 발신자가 적은 메시지를 전기신호로 변환 후 편지 혹은 엽서와 같은 형태로 변환된다. 발신자가 신체를 통해 작성한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는다. 발신자가 편지 방식으로 작성된 메시지는 전기신호로 변환되고 이를 다시 문자로 기록한 최종 메시지가 수신자에게 전달된다. 최종 메시지가 사람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 타자기와 같은 기계를 통해 작성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는 다음에 살펴 볼 그림엽서에 있는 그림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보의 경우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뜻을 전달하려 들인 노동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림엽서(1870년대)

그림엽서는 대개 지역을 지시하는 대상을 전면에 내세운다. 아마도 이를 통해 현재 발신자가 어느 곳에서 소식을 전하고 있는지 대신 말해주는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한 장의 그림은 글보다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한다. 수신자와 함께 했던 장소의 그림이라면 더욱 더 그 의미는 증폭된다. 수신자는 수많은 의미를 해석해 발신자가 전달하려고 했던 뜻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림엽서 뒷면의 영역은 편지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과 동일하게 작동한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편지의 경우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뜻을 전달하기 위해 모든 것을 직접 작성해야 하지만 그림엽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엽서의 반은 타인의 신체, 반은 발신자 신체의 흔적이다. 물론 인쇄된 영역은 그림을 그린 혹은 사진을 찍은 타인을 지시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타인의 신체는 사라진다. 편지가 아닌 엽서를 선택한 발신자는 수신자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반 정도의 수고, 즉 노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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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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