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텍스트' 단면으로 구성된 그림과 텍스트

마치 전보에 적힌 글이 발신자의 신체를 지시하지 않듯, 엽서에서의 그림은 요즘 디지털이미지를 인식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즉 그것을 그렸거나 혹은 촬영한 이를 떠올리기보다는 하나의 메시지로 인식한다. 장소를 나타내는 그림, 크리스마스와 같이 특정한 날을 기념하는 그림 등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한 사건을 지시한다.

흥미로운 것은 엽서에 있는 그림이나 사진의 영역, 내용이 들어갈 텍스트의 영역이 엄격하게 지켜졌다는 점이다. 오직 그 영역을 정당하게 침범할 수 있었던 것은 (우체국) 직인뿐이다. 적을 내용이 많은 경우, 발신자는 문서 편집기에서 폰트를 줄이는 것처럼 글씨체를 작게 적는 정도였다. 물론, 이와 같은 현상은 엽서의 구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앞면은 그림이 뒷면은 글을 쓸 공간으로 구성된 탓이다. 그리고 엽서의 목적 자체가 내가 있는 장소에서 너에게 간단한 안부를 묻는 정도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두 영역은 서로 침범하지 않았다. 적확하게 말하면 텍스트와 그림은 서로 구별되었다.

마치 엽서를 보는 것처럼 앞 모니터에서는 그림이 뒤 모니터에서는 텍스트를 볼 수 있는 날도 올 수 있겠지만, 그다지 가치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디지털이미지는 양면으로 구성된 엽서와 달리 단면으로 구성된다. 디지털이미지는 공간의 한계가 있다. 여기서 공간은 시각적 범위에서의 공간이다. 거대한 디지털이미지나 아주 작은 엽서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엽서와 마찬가지로 디지털이미지는 이런 시각적 범위에서 제한을 갖는다. 다만, 디지털이미지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스크린 공간에 제약을 갖는 것이지 결코 양으로서 의미하는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디지털이미지는 시각적 범위 안에서 좌우 혹은 상하로 끊임없이 펼쳐진다.

디지털이미지로써 엽서의 재현은 스크린 표면의 제한 탓에 그림과 텍스트가 같은 표면에 놓이게 된다. 그림은 텍스트를 침범하고 텍스트는 그림을 침범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으로는 텍스트가 그림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말해야하겠지만, 기술적으로 설명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그림이 텍스트 영역을 침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가 침범하느냐의 문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결국 둘은 하나로 합쳐진다.

신고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이미지 맵

    자유학습/이미지와 텍스트 다른 글

    댓글 0

    *

    *

    이전 글

    다음 글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