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텍스트' 기술영상시대에서 자유란 무엇인가

아직 확신은 없지만, 토론에서 제기된 ‘자유’의 의미를 살펴본다. ‘자유’란 무엇인가. 어떤 ‘자유’를 말하려고 하는가. 바로 기술영상시대에서 빌렘 플루서가 말한 ‘자유’에 대한 의미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을 ‘노예’로 인식한다. 여기서 ‘노예’는 억압된 대상이며 자유롭지 않은 대상을 말한다. 스마트폰의 좋지 않은 면도 있는 반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알리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글이나 촬영한 사진을 전달하기 위해 늘 사용하는 기기이다. 물론, 누군가 겪은 일을 알기 위해 사용하는 기기이기도 하다.

글이나 그림을 그리는 대표적인 도구는 펜일 것이다. 펜을 통해 내가 겪은 일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려면 우리는 일단 그것을 추상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겪은 일을 시시콜콜 전달하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 따라서 구체적인 일은 추상을 거쳐 일반화되고 그것을 전달받은 상대방은 비록 똑같지는 않지만, 대체로 메시지를 이해한다.

기술영상시대에서 펜을 대신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 스마트폰이라 생각할 것이다. 펜의 물질성에 입각해 그것과 치환할만한 것은 역시 스마트폰이다. 하지만, 펜의 기능은 스마트폰의 수많은 기능 가운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즉, 스마트폰의 ‘메모’ 소프트웨어와 ‘키보드’ 소프트웨어를 제어하면 펜과 같이 기능한다. 펜은 소프트웨어에 가깝다. 스마트폰의 좋지 않은 인식은 스마트폰의 여러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좋지 않게 인식하는 이유는 내가 겪은 구체적인 일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 즉 커뮤니케이션 과정 때문이 아니라 단절된 대화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펜과 치환되는 소프트웨어를 바라보며 플루서의 ‘자유’를 고민해 보면 좋을 듯하다. 

스마트폰에 파묻혀 산다는 것은 걱정할 일이다. 이는 앞서 말한 ‘노예’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흔히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사용시간을 적당히 조절해 구속에서 벗어나라는 처방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거나 사진을 촬영하는 것은 다르게 인식한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창조적인 행위가 아닌 스마트폰의 또 다른 소프트웨어의 활용 문제이다.

플루서는 프로그램이 할 수 없는 것을 찾아 창조하는 행위야 말로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는 행위라 말한다. 즉, 프로그램화된 행위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프로그램이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매트릭스처럼 빨간약을 먹어야 알 수 있을까? 빨간약을 먹는 다는 것은 프로그램 지배하에 있던 자신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 상상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런 억압된 현재를 부정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의지이다. 비록, 소프트웨어를 통해 창조된 결과물이 배포되고 그것이 대화로 이어져 담론을 형성하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우리는 이런 허무주의로부터 벗어나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코드화된 상상물을 창조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불확실하지만, 아마도 이것이 플루서가 말하는 ‘자유’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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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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