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텍스트'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을 다시 읽으며

이미지에 대한 짧은 생각 후 텍스트를 살피고 있다. 텍스트를 살피려면 적당한 입문서를 찾아야 하는데 아직 찾지 못했다. 난해하지만 그동안 읽고 있던 롤랑 바르트의 『텍스트의 즐거움』을 통해 옮긴이가 말하는 의사소통보다는 생산성을 재현보다는 상징을 언표보다는 언술행위를 살펴보려 한다. 이는 바르트의 생각이기 보다는 옮긴이의 생각이며 시대의 흐름이자 트래픽이다. 아직은 온전히 내 생각을 말하기 힘들기 때문에 옮긴이의 생각을 토대로 바르트의 텍스트론을 살펴보려 한다.

텍스트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시니피앙의 다각적이고도 물질적·감각적인 성격에 의해 무한한 의미생산이 가능한 열린 공간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언어학이 언표·의사소통·재현의 산물이라면(크리스테바의 용어로는 현상텍스트), 텍스트는 언술행위·상징화·생산성(크리스테바의 용어로는 발생 텍스트)의 영역이다. 바르트가 〈이야기의 구조적 분석 입문〉에서 연구대상으로 삼은 것이 바로 이런 현상 텍스트라면, 《S/Z》에서 목표로 하는 것은 의미작용의 생성과정인 발생 텍스트이다. 따라서 작품과 텍스트, 현상 텍스트와 발생 텍스트의 구별은 시간적 상황이나 작품의 현대성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언어를 작업하는 과정 속에서 체험되는가 아니면 단순히 물리적 공간을 차지하는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작품은 소비의 대상이나, 텍스트는 작품을 소비에서 구해 내어 유희·작업·생산·실천으로 수용하게 한다. 이와 같은 텍스트와 작품의 구별은 테리 이글턴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조주의에서 후기구조주의로의 움직임은 부분적으로 작품에서 텍스트로의 움직임이다』라고 말해지기도 한다.

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김희영 옮김, 동문선, 1997, 9 쪽

늘 그렇지만, 바르트의 이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했다. 벗어나려고 하지만 아직 끝을 보지 못해 벗어날 수 없다. 과연 끝이 있을까? 그렇지만 무한히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늘 새로움이 발생한다. 내 무지 탓일 수도 있지만, 그런 반복 속에는 전혀 지루함이 없다. 잠시 멈춤이 있을지언정 반복은 끝이 없고 끝이 없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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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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