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와 텍스트' 샤프로 글쓰기

연필을 고집하기도 하고 익숙한 키보드로 글을 쓰다가 다시 샤프로 글을 쓴다. 이것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만 나만의 스타일이 완성된다는 외부의 심한 압박 탓이다. 아날로그 감성의 안성기가 아니라 스마트한 감각의 안성기라는 반전 광고는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특정한 위치에 서 있다는 착각을 준다. 그것은 나만의 스타일 그러나 모두가 인정하는 스타일이다.

연필은 그것만의 물질성이 있다. 내 감성은 섬세하지 않다. 세밀하지도 않으며 강박에 익숙해있다. 쓰던 제품을 계속 쓰는 이유는 그 익숙함 때문이다. 연필로 종이에 글을 쓰면 사각거리는 소리가 난다. 두 물질의 거침이 클수록 그러니까 마찰력이 클수록 그 소리는 더 강하다. 하지만 난 두 물질이 충돌하는 매순간을 알아채지 못한다. 사각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단지, 길쭉한 연필로 전해지는 파동을 느낄 뿐이다. 정말일까? 사각거리는 소리가 하나의 환청이란 확신 때문에 다른 확신을 확신할 수 없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연필이 종이에 가하는 압력을 파동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샤프는 연필을 본 떠 만든다. 연필보다 샤프가 먼저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샤프의 몸집은 연필과 유사하다. 길쭉함, 각지거나 혹은 둥근 형태는 연필을 모방했다. 묘사인가? 샤프가 연필의 다음 세대이고 모양새가 유사하더라도 처음 샤프를 쥔 날 그 딱딱한 감각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처음 느낀 메마른 플라스틱 피부는 점점 더 매끈해지고 점점 더 촉촉해진다. 마치 연필의 몸집을 손톱으로 눌렀을 때 손톱자국이 남는 것처럼 샤프 몸집에도 그 자국이 남을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모든 것이 환청이고 환각이라 할지라도 사각거리는 소리, 미세하게 전달되는 파동의 유혹은 쉽게 떨쳐버리기 어렵다. 더군다나 샤프로 쓴 글을 다시 키보드로 옮기는 작업은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른다. 비록 글을 쓸 때, 내 안에 있던 감정이 샤프를 통해 감각으로 되돌아 왔을지라도 키보드로 글을 옮기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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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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