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허무감이 밀려오는 영화 인 디 에어

영화가 끝나자 허무함이 밀려왔다. ‘결국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인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었지만 나는 뭔가 다른 결말을 바라고 있었나 보다. 인류는 공동체로 생활하며 서로를 지키며 살았다. 밖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협을 공동체의 보호막으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밖의 위협보다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위협을 더 위협적으로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마도 빙헴은 그런 인류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는 자화상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허무함은 무엇인가? 사진은 늘 다른 매체보다 메시지를 전달함에 느리고 또 느리다. 이는 인식의 문제보다는 존재의 문제다. 늘 거기에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현상을 사진은 보여준다. 물론 사진을 통해 드러난 명백한 존재는 인식을 방해할지 모른다. 빙헴이 한 손으로 들고 있는 사진 속 인물들은 그곳에 없지만 그곳에 있기를 바라는 염원의 또 다른 모습이다. 동생은 신혼여행을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여러 도시를 누비는 오빠 빙헴의 손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내가 느낀 허무감은 아마도 빙헴의 여동생이 바란 신혼여행의 달콤함, 그러니까 일상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그런 일탈감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일탈감은 틀린 단어일지 모른다. 빙헴이 잠시동안 (아니, 지속했을지도 모를) 고란과 나눈 밀회를 일탈이라고 한다면 여동생이 누리지 못한 신혼여행도 또 다른 일탈이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빙헴은 우리가 잘 아는 지켜야 하는 어떤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고란과 여동생은 지켜야할 그 어떤 것이 있었던 반면, 빙헴은 지킬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있었다면 천만 마일리지라는 목표 뿐이었다.

과연 빙헴은 어떤 쪽에 속해야할까? 천만 마일리지라는 인생의 목표는 달성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지켜야 하나? 내가 느낀 허무함은 바로 이런 이유다. 고란 또는 여동생,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나는 빙헴과 같이 또 다른 목표를 세우고 방랑의 길을 떠나는 그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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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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