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곡동 길주로 변에 벽화가 조성되었다. 많은 자원봉사자가 참여하였고 그들의 땀과 노력이 아름다운 거리를 조성했다. 오래된 페인트를 벗겨 내고 퍼팅 작업으로 벽 틈을 메우는 등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었으리라. 게다가 까다로운 타일작업과 더불어 어린 아이와 함께하는 합동 작업까지 있었으니 고충이 컸을 듯하다.

산곡동 (山谷洞, Sangok-dong)

"구의 중앙 서쪽에 위치하는 법정동이다. 서구 가좌동과의 경계에 원적산(165m)이 있다. 구한말 부평군 마장면 산곡리(山谷里)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천군 부내면 산곡리가 되었다. '마장(馬場)'이라는 지명은『대동여지도』와 『호구총수』, 『부평부읍지』, 『1872지방지도』에서 확인된다. 『조선지지자료』에 산곡리(山谷里)라는 한자 지명과 함께 우리말로 '묏골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지명은 원적산 골짜기라는 의미를 갖는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인천부 백마정(白馬町)으로 개명되었다. 백마라는 이름은 과거 이곳에 말 목장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말을 타고 훈련하는 군대 훈련장이 있었다는 유래를 갖는다. 광복 이후 1946년 백마정은 다시 산곡동으로 개명되었다. 1995년에 북구로부터 부평구가 분구되면서 북구 산곡동에서 부평구 산곡동으로 변경되었다. 산곡1~4동의 행정동으로 나뉘어 있다."*

벽화가 조성된 구간은 백마장사거리에서 원적산터널요금소 방향으로 두 블록이다. 일제강점기에 말을 타고 훈련하는 군대 훈련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어느 곳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산곡4동을 '백마장'이라 불렀다는 유래로 유추해 보면 그 근처가 아닐까 생각된다.

지금의 산곡입구삼거리에서 백마교를 지나 원적사거리에 접어 들면 '산곡동입구'라는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이 일대에는 과거 '백마'라는 지명의 흔적이 꽤 많은 곳이지만 세월이 흘러 '백마장입구'가 '산곡동입구'로 고쳐 불려 지 듯 점점 사라지고 있다.

길주로 변에 벽화를 조성한 목적은 역시 마을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함이리라. 원적산터널요금소를 지나는 많은 차량과 원적산을 찾는 등산객의 눈길을 끌어 잊혀져 가는 마을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 벽화가 조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답사를 나갔던 그 날, 이를 입증 하 듯 행인의 발길이 잠시 머묾을 보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벽화에 있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마을과 관련 있는 주제를 선택하거나 전혀 연관이 없는 소재를 선택하는 양자 택일이 이뤄졌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완성된 대부분의 벽화는 후자에 속하는 편이라 제쳐두더라도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도깨비와 혹부리영감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자연을 주제로 그려진 벽화는 그저 감상을 하면 그만이지만 인간이 등장하는 벽화는 얘기가 달라진다. 나는 연관이 없을거 같은 설화의 등장으로 이곳이 혹부리영감이라는 설화가 탄생한 곳인지 생각했고 좀 더 생각을 발전시켜 지역적으로 혹부리영감이 모여 살던 동네인지 고민도 해보았다. 답사 중 만난 아이에게 물어볼 걸 그랬나 보다.

궁금증은 잠시 접어 두고 벽화를 따라 걷다 살며시 골목에 들어 섰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향수'라는 감정으로 골목에 부쩍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른 이들도 나와 비슷한 감정으로 골목을 바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떤 감정에서건 골목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굳이 확인할 필요가 없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내가 서 있던 그 곳, 골목길 풍경이 진실인지 증명할 방법은 없다. 어른이 되어 걷게 된 골목길에서 언젠가 걸었던 느낌이 스쳐 지나갈 때, 그 기억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이내 사라져버린다. 과연 내가 봤던 그 풍경은 무엇일까?


* "한국지명유래집 인천",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 2009, 169쪽.
** "부평구 지명유래 / 부평동 일원", <지역정보포털>, (2013. 7. 16. - 접속날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