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시뮬라크르

영화, 이퀼리브리엄(2002)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도시를 지배하는 의문의 총사령관처럼, 나 또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그를 본다. 차이가 있다면 총사령관은 이미 죽어 존재하지 않지만, 스크린을 통해 부활했고 내가 보고 있는 그는 대형 스크린 앞에 생생히 살아있다는 점이다. 사유가 이렇지만 내가 실제로 보고 느끼고 손뼉을 쳤던 것은 바로 저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노래했던 그다. 실재가 내 앞에 생생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그를 자세히 보고 싶다는 욕망..

깊이와 해석

내 사진을 보는 이들은 '깊이'를 보고 해석할까? '느낌'에 '깊이'가 포함되었다고 해석되지는 않으리라. 직시를 통해 바라본 사진은 개인 고유의 감성과 맞물려 다양한 느낌이 창출되도록 의도된다. 바로 이 순간, 느꼈던 알 수 없는 감성을 고민할 시간을 할애할지는 미지수다. '아름답다', '독특하다', '굉장하다'와 같은 수식어는 직시를 통한 감성이다. 이를 넘어서는 사진을 보게 된다면 사유하는 시간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처음으로..

사진 연출에 대한 오해

흔히, ‘기다림’에 대한 것을 ‘연출’로 오인하는 경향이 있다. 원하는 구도에서 의도한 구성, 즉 피사체 또는 오브제의 출현을 기다리는 것은 연출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어찌해볼 수 없는 것이 우연성과 맞물려 접목되었을 때 포착한다면 그것이 ‘스트레이트’ 사진이다. 하지만 연출에서는 피사체 혹은 오브제를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 놓거나 만들어낼 수 있다. 산을 찍고 싶다고 지금, 이곳에 옮겨올 수 없지 않은가?

기억과 망각

과거 사진을 보며 기억조차 없는 일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원한 ‘망각’은 있을 수 없으며 영원한 ‘기억’ 또한 없다. 하지만 망각 속에는 또 다른 이상한 성질이 있으니. 망각은 어떤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것 외에 잘못 지각하거나 없는 자극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결국, 착각과 환각이라는 것에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은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고 만다. 망각의 두 얼굴 앞에서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

질서와 정돈

자연스러움과 자연계의 질서는 같은 뜻일까? ‘질서’란 혼란이 없고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를 뜻한다. ‘정돈’과는 분명 다른 의미이다. 어지럽게 흩어진 것을 가지런히 바로잡아 정리하는 것과 어찌 같을 수 있는가. 아무리 흩어진 자연이라도 그 속에는 질서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자연 속에서 우연히 정돈을 발견한다면 뜻밖의 상황에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다. 2016-4-6 글을 읽고 사진을 다시 보니 최근에 읽었던 한 과학 얘기가..

말하지 않는 사진, 거짓말을 하다.

보름달을 보고 그 둥근 밝음에 매혹되어 셔터를 눌렀지만, 정작 내게 남겨진 것은 반쪽뿐이다. 우연성, 장비의 한계 등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넌 거짓말을 했다고 추궁해본다. 사진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 속에서 거짓말을 할 뿐이다. 2016-4-6 뭔가 이해하지 못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지금 내가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요즘은 그나마 덜한데 당시엔 꽤 많은 책들과 씨름을 하던 터라 매일 새로운 세상을..

허탈한 '사진의 우연성'과의 만남

방금, 한 잔의 커피 속에서 '다양성'을 목격했다. 정확히 말한다면 네 개의 얼음이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그 작은 잔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동그란 얼굴에 기포를 머금은 녀석, 커다른 꽁지를 보이는 녀석, 꽁지를 감춘 녀석 그리고 극히 일부만 보이는 녀석. 한 잔의 일회용 컵 속에서 이런 다양성을 만날 수 있다니. 하지만, 정작 내 곁에 사진기는 없었다. 2015-11-23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밖을 나선다. 그리고 커피를 다 마셨을 때 사건이..

사진 연속성

사진에 연속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관찰은 곧 연속된 사유의 결과임은 분명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결국 특정한 피사체에 대한 의식이다. 알 수 없는 유혹으로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또 다른 꿀을 찾기 위해 이동하는 벌꿀처럼 이곳저곳을 날아다닌다. 힘든 여정을 마친 후 결과물을 보았을 때 그때 느꼈던 그 유혹이..

감성을 더한 애완자동차

연출된 사진처럼 보인다면 슬쩍 보던 타인의 눈길을 잠시라도 붙잡아둘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늘 들려오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진실한 사진은 결국 그 진심이 전달될 거라는 말이다. 연출되었다고 해서 진심이 담기지 않은 사진인지를 자문해 본다. 연출된 것이지만 그렇지 않게 보이는 것, 즉 자연스럽게 연출된 것이 우리를 현혹하고 있지만,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만들어지고 각색된 모습이 진짜 모습으로 각인되어 두려움을 느낀다는..

Person of Interest, 주사위를 던지다.

요즘 재미있게 보고 있는 「Person of Interest」에 대해 느꼈던 점을 정리해볼까 하다가 이 사진을 보고 난 후 엉뚱한 생각이 떠올라 다른 주제로 정리를 시작해 본다. 사실, 이 드라마의 묘미(개인적인 차이가 있겠지만)는 듬직한 리즈와 명석한 두뇌 소유자인 핀치의 활약이다. 우리가 흔히 보고 있지만 의식하지 않는 CCTV를 미국 정부를 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활용하게 되고 매 순간을 감시하고 판..

구름 옆에서 휘휘 손을 저을 수만 있다면

작년, 땡볕 아래에서 연신 땀을 흘리며 찾아 나섰던 맑고도 맑은 한 장의 구름 사진이 생각난다. 가을 하늘도 매력적이지만 뜨거운 여름에 만나는 구름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두 사람이 서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이들은 같은 하늘을 바라보고 같은 구름을 보고 있다면 같은 느낌이 들 수 있을지.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비슷한 생각을 떠올리지는 ..

경북에서 만난 고디

'다슬기'가 이토록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미쳐 알지 못했다. 경북에서 아이와 보낸 휴가 동안 만난 다슬기, 그 지역에서는 '고디'라고 부른다고 하니 그렇게 불러줘야겠다. 부모님은 손자들을 데리고 '올갱이' 잡으러 가자고 말씀하시니 그 또한 재미가 있다. 하나의 객체에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진다는 것은 존중할만하다. 굳이 표준를 들어 하나로 통일하자고 말하는 것은 썩 좋지 않은 생각일 듯하다. 뜻을 알 수 없으면 알아가면 되고 그것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