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보고 읽고 쓰기/밝은 방 (28)

밝은 방: 15(의미하기)

사회는 순수한 의미를 경계하는 것 같다. 사회는 의미를 원하는 동시에 이것을 덜 날카롭게 만들 수 있는, (인공두뇌학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어떤 잡음에 둘러싸이기를 바란다. 또한 사회는 그 의미(효과가 아니라)가 너무 인상적인 사진은 곧 외면한다. 사람들은 사진을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미학적으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 그 사진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문자와는 다른―생각하게 하고 암시하였다. 결국 사진은, 두려움을 주거나 찡그리거나 비난할..

밝은 방: 14(현장에서 포착하기)

초기에 ‘사진’은, 놀라움을 주기 위하여, 눈에 띄는 것을 촬영하였다. 그러나 곧, 잘 알려진 전도에 의해 사진은 자신이 촬영한 것을 사람들의 눈에 띄게 만든다. 그리하여 ‘하찮은 것’이 궤변적인 가치의 절정이 된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38쪽 문장은 짧지만, 잘 알려진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놀라움’을 이야기 하면, 샤를 보들레르는 사진이 예술 영역을 침범함을 불쾌했다. “아..

밝은 방: 13(그리기)

나의 연구의 현 단계에서는 사진이 아무리 사실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그림과 구별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회화주의’는 사진이 자신에 관해 생각하는 하나의 과정법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진이 예술에 접근하는 것은, 회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연극을 통해서이다. (나에게는 그렇게 생각된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36쪽 사진은 예술성을 증명하기 위해 ‘회화주의’ 사진을 추구했던 때가 있..

밝은 방: 12(정보제공)

사진은 순수한 우연성이며, 오직 우연일 뿐이므로 (사진은 언제나 표현된 그 무엇이다)― 한 낱말의 돌연한 작용에 의해 하나의 문장을 묘사로부터 명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텍스트와는 달리 ― 민속학적 지식의 재료가 되는 ‘세부들’을 단번에 보여준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34-35쪽 여기서 바르트는 사진과 사물의 관계는 우연하게 맺어진다고 말한다. 즉 사진의 특성 가운데 우연성은 사물의 다른 의..

밝은 방: 11(스투디움)

이번 장의 소제목은 ‘스투디움’이지만, ‘신화’가 더 적합하다. 바르트는 『신화론』(1957)에서 과학의 객관성과 작가의 주관성을 따로 나누지 않고 둘을 화해시키려 했다. 신화는 과학의 객관성을 통해 기표(청각 영상)와 기의(개념)를 분석해 기호를 추출한다. 다시 그 기호를 기표로 삼고 기의를 덧붙여 메타화한다. 이때 의미작용은 주관성이 개입된다. 이렇게 해서 신화가 탄생한다. 이 신화들은 사진에 어떤 기능들을 부여함으로써(신화는 그것을 이용한..

밝은 방: 10(스투디움과 푼크툼)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동문선, 2006)에 관해 마지막 글을 적은지 일 년이 넘었다. 늘 끝맺음이 없는 갈래가 나를 찌른다. 이렇게 다시 시작하지만, 마무리를 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질 않는다. 이번에는 『카메라 루시다』(열화당, 1986)를 살펴본다.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한 책이다.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귀한 책이다. 『밝은 방』은 각 장에 소제목이 있는데 『카메라 루시다』는 번호만 매겨있다. 소제목 방식은 후자를 더 선호한다. ..

밝은 방: 9(이원성)

내가 재빨리 이해한 것은 그 사진의 존재(그것의 모험)가 불연속적이고 이질적인 두 요소, 즉 병사들과 수녀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같은 세계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대조라는 용어를 쓸 필요도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의 시선에 따른) 어떤 구조적 법칙을 예감했고, 그래서 동일한 특파원(네덜란드인 코엔 베싱)의 다른 사진들을 검토함으로써 이 법칙을 확인하고자 했다. [...] 같은 보도의 다른 사진들은 나의..

밝은 방: 8(하나의 경쾌한 현상학)

나의 사진들은 언제나 끝까지 ‘무언가 하찮은 것’의 성질을 띠고 있었다. 존재하는 데 있어서 이와 같은 어려움, 이른바 평범성이라는 것이 사진의 불구성 자체가 아니겠는가? 다음으로 나의 현상학(phenomenology)은 하나의 힘, 즉 정서와 위험하게 타협하는 것을 수용했다. (중략) 그러나 사진 일반의 본질에 도달하는 순간에 나는 방향을 바꾸었다. (중략) 나는 하나의 문제(테마)로서가 아니라 상처로서 사진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싶었다. 왜냐..

밝은 방: 7(모험으로서의 사진)

우리는 사진이 재현하는 대상, 풍경, 육체를 욕망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알아보게 하는 존재를 사랑하거나 사랑했을 수 있다. 또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대해 놀랄 수도 있고, 사진작가의 실력을 찬양하거나 그것에 대해 논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관심들은 맥빠지고 이질적이다. 어떤 사진은 이 관심들 가운데 하나를 만족시킬 수 있고 미약하지만 나의 흥미를 끌 수 있다. 또 어떤 사진이 나의 강력한 관심을 유발한다면, 나는 그 사진..

밝은 방: 6(구경꾼: 취미들의 무질서)

나는 나의 기질에 대해 논증하고 싶은 욕망을 항상 느껴왔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텍스트의 장면을 내 개인성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 그 반대로 이 개인성을 주체에 대한 하나의 학문에 제공하고 내밀기 위해서이다. 이 학문이 나를 외소화시키고 짓누르지 않는 어떤 일반성에 다다르기만 한다면(이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름이 어떤 것이든 나에겐 상관없다. 따라서 그 학문을 살펴보러 가야 했다. 롤랑 바르트, 《밝은..

밝은 방: 5(사진 찍히는 자)

인물 사진은 힘들의 닫혀진 영역이다. 네 개의 상상적인 것이 그 속에서 교차하고, 대립하며 변형된다. 카메라 렌즈 앞에서 동시에 나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자이고, 내가 사람들이 나라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자이며, 사진작가가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가 자신의 예술을 전시하기 위해 이용하는 자이다. 달리 말하면 이상한 행동이지만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모방하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누군가 내 사진을 찍도록 놓아둘 때마다) ..

밝은 방: 4(촬영자, 유령 그리고 구경꾼)

이렇게 하여 나 자신이 사진에 관한 ‘앎’의 척도가 되었다. 내 육체가 사진에 대해 아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관찰한 것은 한 장의 사진이 수행하고, 겪고 바라본다는 세 가지 실천(혹은 세 가지 감동, 혹은 세 가지 의도)의 대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롤랑 바르트, 《밝은 방》,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22쪽. 롤랑 바르트가 말한 ‘구경꾼’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경꾼의 의미가 사진을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