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사진노트 (246)

아이와 함께 읽고 싶은 청소년 인문교양매거진 유레카

흥미로운 잡지, 『청소년 인문교양매거진 유레카』를 발견했다. 발견은 늘 모험이 함께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흥분될 수밖에 없다. 잡지의 슬로건은 ‘논술 대비’다. 그렇다고 꼭 수험생만 읽는 잡지는 아닌 듯하다.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샘플을 보니 아이와 함께 토론해보면 어떨까 싶은 주제가 참 많다. 요즘 같은 시대에 늘 유쾌한 말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12월에 발행된 384호 특집 논쟁은 “예술작품에 대한 이해, 작가의 의도냐, 독자의..

사춘기도 모르는 어른

뭔가를 배운다는 것은 늘 즐겁다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과 다르게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축복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아이에 대해 공부할 기회는 정작 없었다. 아마도 내 아이이니 잘 알 수 있다는 오만함 때문이리라. 아장아장 걷는 녀석이 이제 자기 얘기를 하려는데 정작 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춘기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는 아무리 부모에게 반항하고 못된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줘도 부모..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합니다.

정부는 11월 3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확정 고시했다. 정확히 말하면, 박근혜 정부가 이 사태를 추진한 주체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사진가에 비유하면, 사진가는 국내에서 오직 한 곳만을 찍는 사진가가 된 셈이다. 한곳도 아니다. 한 점일 뿐이다. 카메라를 돌려 다른 곳을 찍을 수 없는 상황이다. 흔히 카메라는 사진가의 관점이라 한다. 관점이 하나가 된다면, 사진가라는 존재는 무의미하다. 존재 가치가 없다. 이제 사진가의 역할은 기계..

순수한 행동

그는 내게 퉁명스럽게 질문을 했다. “순수예술은 또 뭐야?” “그러게요. 그건 뭘 의미할까요?” 그는 ‘순수’라는 말 자체가 마뜩치 않은 눈치였다. 당신이 생각하는 사회와 오늘날의 사회는 너무도 달라 늘 힘들어했다. “분노는 행동을 요구한다.”는 존 버거의 말이 그에게 잘 어울린다. 그는 학생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며 함께 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아니, 그것은 행동이다. 아이들을 보며 그는 삶의 희망을 보았으리라. 당신 스스로 세상을 바꾼다는 영..

하루하루 적는 저널 글쓰기

요즘 상당히 즐거운 작업을 하고 있다. 남들에겐 별스런 일일 게다. 예전에는 글을 많이 생산해서 다산왕으로 등극하고 싶었다. 질보다는 양이라고 할까? 아무래도 텅 빈 글 목록을 보면 이런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어느 정도 글을 채워 넣고 나니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긴다. 같은 글 또 써서 뭐하나? 아직 정리되지 않은 글이 참 많다. 당시에는 이 정도면 되겠지 싶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옛 글을 찾아보니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다. ‘완..

볼거리보다는 다른 재미가 있는 곳

파주 프로방스 마을에는 담배 피는 곳이 없다. 보이지 않는 성곽을 벗어나야 담배 물 곳을 찾을 수 있다. 꽁초 버릴 곳이 있어야 담배를 태우는 습관 탓에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꽤 운치 있는 곳이었다. 프로방스마을, 편의점, 담배 - 갖출 것은 다 갖춘 곳이다. 이만한 곳도 없다. 갑자기 우리를 태우고 온 버스 운전사의 말이 만화 말풍선처럼 떠올라 킥킥 웃고 만다. “여긴 볼 건 없어요.” 맞는 말이다. 볼거리보다는 다른 재미가 있다. 프로방스 마을..

총체예술에서 개별예술로

개별 장르들은 각자 제 길을 걸어 순수회화, 순수음악, 순수문학, 그리고 순수건축이 된다. 예술이 맥락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하면서 ‘어디에 그림이 놓여 있고, 그 장소가 그 그림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해졌다. 그에 따라 “전체 속에서 불가결한 의미를 지니는 그런 뜻 깊은 형상의 세계를 형성하는 일도 불가능하게 되었다.” 이로써 “사물의 의미마저 상실된 것이다.” 이는 도상해석학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사실 오늘날 회화나 조각의..

그림은 보는 것이기 이전에 읽는 것

현대 예술은 내용보다 형식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19세기 이전만 해도 형식은 여전히 내용에 종속되어 있었다. 즉 그림에서 보는 형태와 색채는 인물과 사물의 재현에 사용되었고, 이는 다시 종교적,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림은 ‘보는’ 것이기 이전에 ‘읽는’ 것이었다. 진중권,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 휴머니스트, 2008, 160쪽 2016-4-7 나는 사진을 보기보다는 읽기를 원하는데 읽기 이전..

롤랑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 가운데 서문을 들춰보니

일반성에 맞서, 과학에 맞서 나의 내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그 소리를 듣게 하고자 하는 것, 그것은 바로 내밀함입니다. 롤랑 바르트, 《롤랑바르트, 마지막 강의》, 변광배 옮김, 민음사, 2015년, 15쪽 롤랑 바르트의 《롤랑바르트, 마지막 강의》 가운데 서문을 읽다가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대한다》가 생각났다. 둘 다 앞 페이지만 들춰 봤을 뿐이지만, 왠지 모르게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나 싶다. 하루 빨리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놓아야..

나만의 시선을 찾는 여행, 포기하지 말자

요즘은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다. 한때는 중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무 때나 늘 살펴봤다. 그러나 느슨해지면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세계에서 내게 이것은 치명적인 이유다. 깜냥이 못되니 하지 않는 것이 맞다. 그래도 가끔 들어가 소식을 접하곤 한다. 궁금하니까. 구독하고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유된 인터넷 기사가 있다. “[채승우의 사진공부] 나만의 시선이 담긴 사진 찍기”이다. 읽고 있거나 또는 늘 읽고 싶은 사진 관련..

두 명의 수전 손택 그리고 수전 손택

얼마 전, 수전 손택의 책을 책장에 나란히 놓았다.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자꾸 고개를 돌려 보게 된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흡족하다. 내가 그녀의 글을 모두 이해한 것도 아니지만, 꽤 오랫동안 그녀를 만났고 이해하려고 했다. 책을 읽는다고 말하기 보다는 누군가를 만난다고 말하면 왠지 친근감이 느껴진다. 김광석의 노래를 듣거나 비틀즈의 노래를 듣는 것과 같은 감정이 아닐까. 유형의 존재가 사라지고 무형의 존재로 돌아갔지만, 이렇게 다시 유형의 존재..

형에서 빛으로 바뀐 미의 원리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오면 이 전통적인 관념에 변화가 생긴다. 그 변화는 당시를 지배하던 신플라톤주의의 정신적 분위기와 관계가 있다. 가령 플라톤에게 ‘이데아’는 이상적 형태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플로티노스(Plotinos, 205~269?)는 ‘일자’를 무엇보다도 빛으로 표상했다. 즉 만물에 미를 부여하는 원리가 형(形)에서 빛(光)으로 바뀐 것이다. 빛은 부분으로 나뉘지 않는다. 따라서 거기에 수적 비례도 있을 수 없다. 한마디로 미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