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탕 비수다 (485)

뒤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

이걸 여유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평소보다 아침 일찍 일어났다. 이런 날은 유독 하루가 길었다. 늘 하는 일은 정해져있는데 뜻하지 않은 시간이 생겨서 그럴까? 비가 온다. 창문으로 흘러내리는 빗줄기가 보인다. 사실, 창문은 아니다. 방충망의 오밀조밀한 틈에 고여 있던 빗물이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지곤 한다. 방충망이라니, 비 오는 날, 참 낭만적이지 않은 단어다. 정말 그렇다. 이제 창문으로 흘러내리는 빗줄기는 보기 힘들다. 아마도 그것..

르몽드 디플로마티그 92호: 투명한 거리 이름들

르몽드 디플로마티그, “파리의 정치적인 거리 이름들”에 소개된 '슈발리에들라바르(Chevalier de la Barre;바르의 수호자)'란 거리가 있는지 Google Map에서 검색하니 쉽게 검색된다. 이 거리명은 1870년대 프랑스 제3공화국 때 생겼고 아직까지 살아남았다. 기사를 읽고 국내 도로명이 떠올랐다. 말 많았던 도로명 일제 정비 얘기는 잠잠해진 상태다. 나는 이 사태가 다른 사태에 묻혔을 것이고 아직 진행 중 일거라 믿는다. 내가 살고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2호: 한가로움의 은밀함

오랜만에 펼쳐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그동안 좋지 않은 일을 연달아 겪어 여유가 없었던 탓에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5, 6월호는 포장비닐을 뜯지도 않은 채 간직하고 있었다. 삶이란 무엇일까? 살아가는 의미보다 살아가는 그 자체가 힘들다보니 원론적 질문은 다 부질없어 보였다. 수많은 학자들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삶, 그 자체를 말하려 했던 것일까? 첫 지면에 소개된 “런던 예술거리의 은밀함”(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2호)에서 아트딜러인 새디 콜스는 ..

관광지에서 만난 제주도 정낭의 다른 의미

옛 제주도 대문을 정낭이라고 한다. 정주석이라는 기둥에 걸린 정낭 개수로 집주인의 출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다 옛 이야기다. 이제는 체험학습이나 성읍민속마을에서나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흥미로운 정낭을 봤다. 사실, 정낭을 닮은 안내판이라고 할까.만약 ‘출입문’이라는 글자와 방향을 지시하는 화살표가 없었다면 앞서 얘기했던 정낭의 의미를 떠올렸을 것이다. 집주인이 근처에 있는지, 하루 정도 출타 중인지, 꽤 오랫동안 집..

B사감을 만난 운수 좋은 날

오랜만에 외출은 지인의 뜻하지 않은 약속 때문이었다. 가볍게 차 한 잔 하자는 말이 B사감을 만나게 된 운수 좋은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B사감은 현진건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여자기숙학교 기숙사 사감이다. 그녀는 못 생겼다고 하던데 만나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 마디로 핑크빛이다. 프리즘에 다른 빛은 없고 온통 핑크빛만 존재한다고 할까.인천 중구에 있는 한국근대문학관에서 7월 3일까지 <앵글에 담긴 근현대 한국문학 - 윤정미..

사진에서 말하지 않는, 다르지만 같은 감정

“아무도 당신에게 뭔가를 주지 않는다. 당신이 나서서 취해야 한다.”(디파티드 The Departed, 2006)라는 영화의 문구처럼, 막막할 땐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난 누구에게 손을 내밀어야하지? 연휴동안 다녀온 제주도 여행 탓에 일상생활로 다시 돌아오려 애를 쓸 때, 우연히 컴퓨터 문서로 발행되는 <월간이리>를 읽었다. 잘은 모르지만 뜻있는 사람들의 글을 모아 여러 사람이 ..

중간고사를 준비하는 R

R과 M과 함께 취학유예심의를 위한 의무교육학생 관리위원회 심의를 다녀온 지 한 달하고도 몇 주가 지났다. 꽤 시간이 지났다 생각했는데 겨우 한 달 조금 지났으니. 앞으로 갈 길이 멀다. R은 EBS 교재로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M은 집에선 잡생각도 많고 유혹이 많아 공부하기 힘드니 도서관을 추천했고 R도 그동안 잘 따라와 적응한 상태다. 다만, 어느 정도 공부를 하고 있으며 검정고시 준비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 난감했다..

포토닷(2016년 4월호)에 실린 <변두리 사진 보고서: 우리는 이미지로 소통할 수 있을까>를 읽고

물체는 물질로 이뤄진 사물이다. 사진은 사물의 형상을 감광막 위에 나타나도록 찍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게 만든 영상이다. 우리는 사진을 통해 보존된 형상을 보고 사물을 인식한다. 물론 인식 대상은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이며 사진에 보존된 사물은 실재 사물이 아닌 그 사물의 형상이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물질이라 한다면, 사물은 물론 사진도 물질이라 말할 수 있다. 물질은 물체를 이루는 존재이다. 고대엔 물체를 이루는 물질은 단 하나라는 설이 있..

포토닷(2016년 4월호)에 실린 <비기닝 291 젊은 날의 초상>을 읽고

아르바이트는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 미리 사회경험을 쌓는 활동으로 여겼던 시절이 있다. 요즈음, 이렇게 말하면 욕먹기 딱 좋다. 힘든 시기를 극복하면 불안한 미래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다 옛날 얘기다. 꾹 참고 잠시 할 생각이던 아르바이트가 한 해, 두 해를 거듭한다.포토닷 2016년 4월에 “비기닝 291 젊은 날의 초상”이란 제목으로 세 명의 사진가의 사진이 실렸다. 그 가운데 이혜진이 찍은 사진이 특히 눈에..

밝은 방: 25(어느 날 저녁)

오랜만에 읽는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 무슨 이유인지 감회가 새롭다. 방금 트위터에 짧은 글을 하나 올렸다. 월간 사진 잡지 <포토닷>에 대한 얘기지만 새로움을 느낀 지금 감정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포토닷 4월호가 오면 '사진을 본다'는 것과 '사진을 읽는다'는 것, 이 두 가지 관점에서 포토닷을 보고, 읽을 생각이다. 늘 그랬지만, 난 사진을 본다는 것과 읽는다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번 호는 그런 점에 상당히 부합되..

R과 20대 총선 개표 방송을 함께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2012년 4월에 있었던 19대 총선과 같은 해 12월 있었던 18대 대선 땐 M과 함께 했는데 이제는 R도 함께했다. 물론, 투표권이 없는 R이지만 개표 방송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태양의 후예> 탓에 잠깐 맥이 끊겼다. 어쩔 수 없었다. 나와 M은 송혜교의 눈물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마지막 회를 기다리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1호: 맞춤법 검사에 ‘세월호’ 단어를 추가했다.

문서편집기에 ‘세월호’를 입력하면 수정해야할 단어라며 빨간 밑줄이 표시된다. 뭘 수정하라는 거지? 넌 세월호도 모르니? 참 답답한 녀석이군. 맞춤법 검사/교정에 새 단어를 추가한다. 이제 문서편집기도 세월호를 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참 답답한 녀석이다. 2주년이 돼서야 이런 생각을 했으니. 세월호 참사 2주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적어도 내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조금씩 그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