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롤랑 바르트 (40)

밝은 방: 27(알아보기)

“도대체 꿈속에서는 보는 것일까, 아는 것일까”*라는 바르트의 말이 인상 깊다. 바르트가 쓴 글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바르트가 쓴 글이다. 그럼에도 말이라 하고 싶은 이유는, 고서를 읽는 것은 옛 사람과 만나는 것이다. 사람이 서로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것은 말의 형태일 것이다. 그래서 난 글보단 말이라 적길 좋아한다. 바르트는 어머니의 사진을 보면서 그것은 어머니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바르트가 사진 속에서 본 어머니는..

밝은 방: 26(분리로써의 역사)

바르트는 옛 사진들을 정리하며 어머니를 회상한다. 물론, 결코 떠올릴 수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사진 속 어머니는 그가 알고 있는 어머니가 아니며 결코 알 수 도 없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바르트가 포착한 어머니의 모습은 ‘역사’ 안에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역사는 “우리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기간”*을 뜻한다. 그는 그가 태어나기 전 그의 어머니의 모습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역사 속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포착한 순간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

밝은 방: 25(어느 날 저녁)

오랜만에 읽는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 무슨 이유인지 감회가 새롭다. 방금 트위터에 짧은 글을 하나 올렸다. 월간 사진 잡지 <포토닷>에 대한 얘기지만 새로움을 느낀 지금 감정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포토닷 4월호가 오면 '사진을 본다'는 것과 '사진을 읽는다'는 것, 이 두 가지 관점에서 포토닷을 보고, 읽을 생각이다. 늘 그랬지만, 난 사진을 본다는 것과 읽는다는 것에 관심이 있다. 이번 호는 그런 점에 상당히 부합되..

미로를 만드는 저자와 미로를 찾는 독자

책은 더할 수 없는 물질이다. 반면, 텍스트는 손으로 잡을 수 없다. ‘저자의 죽음’에서 저자는 생산자 측면보다 신화 측면이 강하다. 신화가 죽고 다른 생산자가 출현한다. 그것이 바로 독자다. 저자가 작품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저자가 이제 아무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의미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잘못 이해한 것이다. 저자는 미로를 개설한다. 중요한 것은 그 미로는 독자를 위한 것이다. 미로의 시작은 존재하지만,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 독자는 저자가..

나로부터 시작되는 살아 있는 경험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노에마는 ‘그것은-존재했음’이라 확인했다면, 존 버거는 좀 더 사진의 모호성을 파고들었다. 버거는 사진의 모호성은 “작품 ‘이해’의 걸림돌이 아니라”* 말한다. 얼핏 들으면 이 말만큼 이해되지 않는 말도 없다. 모호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흐리터분하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따로따로인 것을 모아 하나로 구성하는 능력이 있다. 하나로 모은 것은 따로따로인 것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사실인지..

밝은 방: 24(취소의 말)

바르트는 앞서 “사진은 순수한 우연성이며, 오직 우연일 뿐”이라 했다. 그는 이런 우연한 사진으로부터 그 본질을 찾는 탐구를 시작했고 그 매개자로 ‘나’를 선택했다. 이것은 모든 것에 들어맞는 것이 아닌 따로따로 들어맞는 앎이다. 1장부터 시작해 23장에 이르는 글이 바로 그 탐구의 기록이다. 지금까지 그가 분류한 사진의 특성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뿐만 아니라 판단을 멈추는 행위도 포함되어 있다. 즉,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는 스투디움이며..

밝은 방: 23(가려진 시야)

때로는 글쓴이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 일부 단락이나 문장만을 다루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특히나 이번 장은 뒷장에 언급된 말 때문에 더 정리가 쉽지 않다. 바로 지금까지 적은 글은 취소의 글이라는 바르트의 말 때문이다. 취소의 글이라는 의미(역자는 개영시라고 언급한)는 바로 다음 글에 정리할 참이다. 사실, 이번 장을 정리한다고 적은 글을 다시 읽으니 24장을 정리하..

밝은 방: 22(사후에 그리고 침묵)

점점 책 전체를 둘로 나누면 앞부분에 해당하는 끝 지점이 가까워진다. 관련 있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요즘, 『현상학이란 무엇인가』(그린비, 2011)를 짬짬이 읽고 있다. 더불어 올해는 에드문트 후설이 쓴 국내 번역본을 읽어볼 참이다. 후설 필독서라고 하는 책들은 모두 오래된 책이라 판이 끊겼다.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뒤를 돌아 뭔가를 찾고 싶은데 정작 뒤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없는 셈이다. 어쨌든, 현상학에서 언급하는 ‘환원’, 그것이 ..

밝은 방: 21(사토리)

어떤 대상에 대해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이나 생각을 떨쳐버리고 사진을 본다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도 이것은 멍한 상태, 그러니까 잠에서 깬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와 같이 내가 대상을 보고는 있지만 마치 대상이 된 것과 같은 상태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는 상태. 시선과 응시의 차이처럼. 바르트는 (어떤) 사진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든 지식, 모든 교양을 추방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물려받으려 하지 않는다.”..

밝은 방: 20(비의지적인 특징)

카카오페이지에서 매일 한 편 무료 만화를 즐겁게 보고 있다. 즐겁게 보는 작품이 하나 있는데 『신이라 불리운 사나이』다. 극 중 암흑가 보스인 주인공 피터팬을 제거하기 위해 비밀스러운 조직, 유다야 신디케이트가 초능력자를 동원해 그를 쫓는 장면이 있다. 무려 초능력자가 등장한다. 소개된 초능력자는 달 뒷면을 촬영할 정도로 상상할 수 없는, 불가능한 능력을 가진 자이다. 그럼에도 피터팬을 정확하게 탐지하지 못하며 애를 먹는다. 초능력은 늘 신비하다...

밝은 방: 19(푼크툼:부분적 특징)

아무리 순간적이라고 하여도 푼크툼은 다소간 잠재적으로 확장의 힘을 가진다. 이 힘은 흔히 환유적이다. 〔…〕 푼크툼의 또다른 확장의 예(보다 덜 프루스트적인)가 있다. 역설적인 말 같지만 그것은, ‘하찮은 것’으로 남아 있을 때, 사진을 온통 가득 채운다.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조광희 옮김, 열화당, 1986, 48-49쪽 바르트는 푼크툼을 디테일로 여깁니다. 세세한 부분, 그러니까 사물에서 한 부분이 전체를 떠올리게 하는 힘이..

밝은 방: 18(스투디움과 푼크툼의 공존)

존 케이지. 그가 버섯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사전에서 음악(music)과 버섯(mushroom)이 서로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두 단어는 서로서로에게 현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묶여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하기에 아주 어려운 공현전(共現前)의 방식입니다. 환유적인 것도 아니고, 대조적인 것도 아니고, 인과적인 것도 아닌 공현전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논리성이 없는 연속, 하지만 논리의 파괴를 의미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