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밝은 방 (13)

로잘린드 크라우스: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

새로운 형태의 환각, 미친 사랑 절판된 책을 읽는 것은 늘 불안하다. 다행스럽게 도서관에 비치되어 기회가 되면 언제라도 대출이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아쉬움과 갈증은 늘 곁에 두고 볼 수 없기 때문에 해소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이런 경우에는 수기로 책의 주요한 내용을 적어 놓을 수밖에 없다. 로잘린드 크라우스가 자신의 비평 글을 묶은 『사진, 인덱스, 현대미술』은 사진담론에 대한 내용이기 보다는 현대미술에 대한 이야기이다. 즉, 그동안 사진의 ..

밝은 방: 9(이원성)

내가 재빨리 이해한 것은 그 사진의 존재(그것의 모험)가 불연속적이고 이질적인 두 요소, 즉 병사들과 수녀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같은 세계에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대조라는 용어를 쓸 필요도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의 시선에 따른) 어떤 구조적 법칙을 예감했고, 그래서 동일한 특파원(네덜란드인 코엔 베싱)의 다른 사진들을 검토함으로써 이 법칙을 확인하고자 했다. [...] 같은 보도의 다른 사진들은 나의..

밝은 방: 8(하나의 경쾌한 현상학)

나의 사진들은 언제나 끝까지 ‘무언가 하찮은 것’의 성질을 띠고 있었다. 존재하는 데 있어서 이와 같은 어려움, 이른바 평범성이라는 것이 사진의 불구성 자체가 아니겠는가? 다음으로 나의 현상학(phenomenology)은 하나의 힘, 즉 정서와 위험하게 타협하는 것을 수용했다. (중략) 그러나 사진 일반의 본질에 도달하는 순간에 나는 방향을 바꾸었다. (중략) 나는 하나의 문제(테마)로서가 아니라 상처로서 사진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고 싶었다. 왜냐..

밝은 방: 7(모험으로서의 사진)

우리는 사진이 재현하는 대상, 풍경, 육체를 욕망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알아보게 하는 존재를 사랑하거나 사랑했을 수 있다. 또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대해 놀랄 수도 있고, 사진작가의 실력을 찬양하거나 그것에 대해 논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관심들은 맥빠지고 이질적이다. 어떤 사진은 이 관심들 가운데 하나를 만족시킬 수 있고 미약하지만 나의 흥미를 끌 수 있다. 또 어떤 사진이 나의 강력한 관심을 유발한다면, 나는 그 사진..

밝은 방: 6(구경꾼: 취미들의 무질서)

나는 나의 기질에 대해 논증하고 싶은 욕망을 항상 느껴왔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텍스트의 장면을 내 개인성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 그 반대로 이 개인성을 주체에 대한 하나의 학문에 제공하고 내밀기 위해서이다. 이 학문이 나를 외소화시키고 짓누르지 않는 어떤 일반성에 다다르기만 한다면(이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름이 어떤 것이든 나에겐 상관없다. 따라서 그 학문을 살펴보러 가야 했다. 롤랑 바르트, 《밝은..

밝은 방: 5(사진 찍히는 자)

인물 사진은 힘들의 닫혀진 영역이다. 네 개의 상상적인 것이 그 속에서 교차하고, 대립하며 변형된다. 카메라 렌즈 앞에서 동시에 나는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자이고, 내가 사람들이 나라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자이며, 사진작가가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그가 자신의 예술을 전시하기 위해 이용하는 자이다. 달리 말하면 이상한 행동이지만 나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모방하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누군가 내 사진을 찍도록 놓아둘 때마다) ..

밝은 방: 4(촬영자, 유령 그리고 구경꾼)

이렇게 하여 나 자신이 사진에 관한 ‘앎’의 척도가 되었다. 내 육체가 사진에 대해 아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관찰한 것은 한 장의 사진이 수행하고, 겪고 바라본다는 세 가지 실천(혹은 세 가지 감동, 혹은 세 가지 의도)의 대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롤랑 바르트, 《밝은 방》,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22쪽. 롤랑 바르트가 말한 ‘구경꾼’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구경꾼의 의미가 사진을 바라..

밝은 방: 3(출발로서의 감동)

가끔 촉이 좋을 때가 있다. 이럴까 싶으면 그렇게 될 때가 있다. 대게 날씨를 비상하게 맞추는 사람이 있는데 흔히 이런 사람을 두고 감이 좋다고 말한다. 현대 시대는 자동화 시대라고 말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속설이 있지만, 이제는 이런 말을 하는 이도 드물다. 드물게라도 보이던 제비는 이제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점점 발전하는 사회 모습에 숨은 한 이면이다.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 이런 말은 책을 ..

밝은 방: 2(사진의 분류 가능성)

한 장의 사진은 언제나 이런 동작의 끝에 있다. 그것은 그것, 그거야, 이게 그것이야!라고 말하지만 그 외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한 장의 사진은 철학적으로 변모될(언급될) 수 없다. 그것은 우연성으로 완전히 가득 채워져 있으며, 이 우연성의 투명하고 가벼운 겉모양이다. 누군가에게 당신의 사진들을 보여줘 보라. 그는 곧바로 자신의 사진들을 꺼내고 이런 식으로 말할 것이다. ‘여기 좀 보세요, 이게 내 형이고, 이게 어릴 적 나예요.’ 결국 사진..

밝은 방: 1(사진의 특수성)

아주 오래전 어느 날 나는 나폴레옹의 막내 동생 제롬의 사진(1852)을 우연히 보았다. 그때 나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놀라움을 드러내며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황제를 보았던 두 눈을 보고 있다.’ 때때로 나는 그 놀라움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않는 것 같았기에(이처럼 삶은 작은 고독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나는 그것을 잊어버렸다. 사진에 대한 나의 관심은 보다 교양적인 양상을 띠었다.롤랑 바르트, 《밝은 방..

밝은 방: 46(시선)

사진은 두 눈으로 똑바로 나를 바라보는 그 힘(정면의 포즈가 보통 시대에 뒤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사진은 이 힘을 점차 상실하고 있다)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어떻게 보지 않고 쳐다볼 수 있는가? 사진은 주의력을 지각과 분리시키고 전자만을 전달하는 것 같지만, 후자 없이 전자는 불가능하다. 괴상한 일이지만, 이런 현상은 노에마 없는 노에시스이고, 사유 없는 사유행위이며, 목표물 없는 조준이다.롤랑 바르트, 『밝은 방』, 김웅권 옮김..

발터 벤야민: 사진의 작은 역사, 세상은 아름답다

발터 벤야민의 짧은 에세이(40페이지 정도), 『사진의 작은 역사』를 읽고 나니 롤랑 바르트의 『밝은 방』과 매우 흡사한 동질성을 느낄 수 있었다. 결론의 유사성은 매우 흥미로웠다. 바르트는 그의 에세이에서 장폴 사르트르의 『상상하는것』을 언급했지만, 벤야민의 이 책을 같이 언급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벤야민은 창조적 사진을 언급하며 반대 개념으로 구성적 사진을 제시했다. 바르트는 창조적 사진의 유사 개념으로 문명화된 코드를 언급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