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존 버거 (12)

나로부터 시작되는 살아 있는 경험

롤랑 바르트가 사진의 노에마는 ‘그것은-존재했음’이라 확인했다면, 존 버거는 좀 더 사진의 모호성을 파고들었다. 버거는 사진의 모호성은 “작품 ‘이해’의 걸림돌이 아니라”* 말한다. 얼핏 들으면 이 말만큼 이해되지 않는 말도 없다. 모호하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이 흐리터분하다는 것인데 그로 인해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는 따로따로인 것을 모아 하나로 구성하는 능력이 있다. 하나로 모은 것은 따로따로인 것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것인지, 사실인지..

선명한 사진을 꺼리는 이유

내 모습이 주제를 넘어서고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왜 선명한 사진을 꺼리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존 버거가 쓴 글을 읽고 더 단단해졌다. 선명한 사진을 좋아하고 즐겼던 때가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본 그대로 사진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건 내 기술이 부족한 탓일 수 있고, 평소에 쌓아놓은 교양이 부족한 탓일 수 있다. 알고 지내는 한 사진가는 눈에 보이는 그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얼마나..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이유

한번은, 구경꾼과 촬영자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양쪽 입장에서 사진을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누구나 사진을 찍고 누군가에 의해 사진 찍히는 시대에 꽤 괜찮은 물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출판을 준비하면서 뭔가 어긋남을 알게 되고 그렇게 프로젝트는 멈췄다. 지금 생각하면, 아니 사진가 장 모르의 말을 듣고 보니 참 잘한 일이구나 싶다. 모르가 한 말은 이것이다. “나는 문득 내가 양쪽의 입장 모두가 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이런 가정은 늘 ..

소를 키우는 마르셀이 들려주는 사진의 의미

두 친구(존 버거와 장 모르)는 사진 작업을 위해 산악지방에 살고 있는 농부와 생활을 한다. 마르셀은 그들과 함께했던 농부 가운데 한 명이다. 마르셀은 소 50마리를 키운다. 이틀 동안 사진가 모르는 마르셀과 생활하며 꽤 친해진 듯하다. 서로 마음을 열면 진실한 대화가 오고가곤 한다. 모르가 현상한 소 사진을 본 마르셀은 그런 것은 찍을 게 못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찍은 사진도 썩 만족스럽지 않은 듯 퉁명스럽게 말을 덧붙인다. 사람 얼굴을..

말하기의 다른 방법: 읽었던 책을 다시 마주하는 날

읽었던 책을 다시 읽을 때 처음 느낀 감동을 다시 마주하는 경우는 드문데 흘러간 시간만큼 내가 달라진 게 이유일지 모른다. 지난 날,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나와 지금, 책을 마주하고 있는 내가 같다면 같은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면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 같다.그럼에도 다시 책을 꺼내들고 읽는다. 혹시나 처음 읽을 때 미처 깨닫지 못한 사실이나 느끼지 못한 감정이 내가 다시 책과 마주하는 동안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존 ..

사진의 이해,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마지막에 의미하는 것

나는 이것을 보는 행위가 기록으로 남길 만한 가치가 있다고 결정했다라는 말은 이제 이것이 유심히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는 나의 믿음은, 이미 그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보여 주지 않기로 한 모든 것들에 비례한다라고 풀어써야 할 수도 있다. 존 버거, 『사진의 이해』, 제프 다이어 엮음, 김현우 옮김, 열화당, 2015, 35쪽 사진이 주는 메시지가 마지막에 의미하는 것은, 본다는 의지보다 보여준다는 의지이다. 존 버거는 사진을 꼭 예술..

빔 벤더스: 『한번은,』, 사진의 개인 혹은 대중적 사용

1 사진은 모호하다. 글은 모호함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사진은 글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에 설명을 덧붙이는 것만큼 위태로운 것은 없다. 구체적으로 ‘사진을 위한 설명’이 아닌 ‘설명을 위한 사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읽힌 사진은 이미 정해진 시선으로 바라볼 일만 남게 된다. 고정된 ‘사진 읽기’는 대상의 상(像) 혹은 지시만을 남긴다. 존 버거는 『말하기의 다른 방법』(1982)에서 고정된 ‘사진 읽기’를 역사와 동치 시킨다..

존 버거와 장 모르: 『말하기의 다른 방법』, 반(半)언어로서의 사진의 의미

존 버거와 장 모르의 사진에 관한 것 존 버거와 장 모르의 『말하기의 다른 방법』(1982) 서문에는 이 책이 어떤 의미로 제작되었는지에 대해 잘 말하고 있다.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는 산악지방에 사는 농부들의 생활을 담은 사진집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는 사진에 관한 것이다. 즉, 오늘 날에 만연한 사진이라는 것의 의미와 활용에 대해 답을 찾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목적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비틀린 시선.

모든 그림의 독자성은 그림이 걸려 있던 장소가 지닌 독자성의 한 부분이었다. 때로는 그림을 다른 데로 옮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그림을 두 장소에서 동시에 볼 수는 없었다. 카메라가 어떤 그림을 복제하면, 그 이미지의 독자성은 파괴된다. 그 결과 그 이미지의 의미는 변화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의미가 여러 가지로 늘어나고 많은 의미들로 조각조각 나누어진다.〔24, 25〕 존 버거가 첫 장 마지막 부분에 언급 하였듯이 위 생각은 발터 벤야민의..

존 버거: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모호한 눈물

존 버거의 산문집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물질문명 사회에서 숨 가쁘게 살아오며 잃어버린 진정성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다. 과거에 겪었던 고통과 슬픔을 잊은 채 행복과 기쁨을 찾고자 했던 어리석음에 경종을 울리는 울림이다. 고통 없이 행복이 있을 수 있는지. 슬픔 없이 기쁨이 있을 수 있는지. 사진을 본다는 것은 생생한 그 현장을 목격하는 것이다. 이거라고 말하면서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면 그보다 더한 증명은 없을 것이다. 사진의 직관..

닮음이란 두 손가락 끝이 만나는 것

존 버거의 산문집은 글로 사진을 썼다는 것이 매력이다. 관련해서는 책을 다 읽고 주절주절 이야기할 참이다. 입이 간지러운 거지. 손이 멈추지 않는 거지. 상상하려 하지 않아도 상상이 되는 그런 글. 이색적인 만남이다. 「턱을 괴고 있는 젊은 여자」라는 표제가 있었다. 표제만으로 어떤 사진일지 쉽게 상상이 간다. "대상과 닮게 그리는 것이 인물화의 조건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닮을 수도 닮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것은 신비로 남는다. ..

자두나무의 눈물

문장에도 습관이 있다. 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이것을 안 것은 낡은 책을 뒤척였을 때이다. 흩날려 적힌 글자가 있다. 빨간색이다. 책을 읽으며 짧은 감상을 적어 놓았다. 천천히 글을 따라 눈을 움직인다. 소름이 돋는다. 마치 오늘 쓴 글과도 같았다. 전혀 변한 것이 없었다. 존 버거는 그를 찾아온 마리사 카미노와 함께 자두나무 옆에 서 있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노출이 2~3분은 필요한 때였다. 둘은 어쩔 수 없이 움직였다. 자두나무도 흔들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