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방: 6(구경꾼: 취미들의 무질서)

밝은 방: 6(구경꾼: 취미들의 무질서)

〈연안부두〉, 인천, 2013.

나는 나의 기질에 대해 논증하고 싶은 욕망을 항상 느껴왔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텍스트의 장면을 내 개인성으로 채우기 위해서는 더욱 아니다. 그 반대로 이 개인성을 주체에 대한 하나의 학문에 제공하고 내밀기 위해서이다. 이 학문이 나를 외소화시키고 짓누르지 않는 어떤 일반성에 다다르기만 한다면(이것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이름이 어떤 것이든 나에겐 상관없다. 따라서 그 학문을 살펴보러 가야 했다.

롤랑 바르트, 《밝은 방》,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6, 31쪽.

I have always wanted to remonstrate with my moods; not to justify them; still less to fill the scene of the text with my individuality; but on the contrary, to offer, to extend this individuality to a science of the subject, a science whose name is of little importance to me, provided it attains (as has not yet occurred) to a generality which neither reduces nor crushes me. Hence it was necessary to take a look for myself.

〈구경꾼: 취미들의 무질서〉는 앞서 롤랑 바르트가 언급했던 마테시스(mathesis)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사진의 보편성을 찾기 위한 판단 기준, 그 중심에 자신을 내세웠던 바르트는 이성적 언어보다는 육체적 언어를 통해 사진의 본질을 찾고자 한다. 누구나 선호하는 사진이 있다. 그렇다고 그것이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런 혼란의 내재성을 바르트는 주목했다. 이것을 정의할 수만 있다면 자연스럽게 사진의 보편성을 찾을 수 있다고 그는 확신했다.

촬영자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지만, 촬영자가 구경꾼으로 된 순간, 혼란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날 흡족했던 사진이 또 어느 날은 별 볼 일 없는 사진으로 느껴진다. 변덕스러운 감정에서 바르트는 자신이 원하는 보편성을 찾을 수 있을까? 느슨한 모임에서는 각자 개인이 품고 있는 혼란스러움 혹은 다양함 속에서 어떤 특별한 보편성은 존재할 수 있지 않을지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다만, 그것이 사진을 보는 구경꾼에 국한된다면 어떤 결론이 도출될지는 미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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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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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4개 입니다.

      • 비밀댓글입니다

      • 아무래도 철저히 구경꾼의 입장으로 사진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 책이 주목을 받을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촬영자가 구경꾼의 입장이 되기도 하지만 철저히 돌변하기는 쉽지 않으니까 말이죠. ^^

      • 오늘글도 참 어려운데요^^;;;; 사진 참 좋아요. 사진조각님도 흑백필름 작업해보시는게 좋을 듯 싶습니다^^

      • 혼란스럽게 한 것 같아 송구합니다. ^^;;

        흑백 사진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아직 확신이 서질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방법론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지 명확한 판단이 서질 않더군요. 참 매력이 있는 흑백 사진이지만 아직은 제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아, 필름, 언젠간 꼭 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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