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 모예스: 미 비포 유, 안녕이라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자 행복이다.

조조 모예스, 《미 비포 유》, 김선형 옮김, 살림, 2013

타이완을 여행하며 윌(Will Traynor)과 루이자(Louisa (Lou) Clark)를 만났다. 낯선 곳에서 《미 비포 유》를 읽어야 조금 더 그들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기차로 낯선 곳에서 또 다른 낯선 곳으로 이동하는 동안 엘리트 사업가에서 사고로 인해 사지마비환자가 된 윌을 만났고 빽빽한 여행 일정으로 녹초가 되어 침대 깊숙이 몸을 맡겨도 시원찮을 판에 책을 펼쳐 그의 간병인이 된 루이자를 만났다. 나는 이렇게 조금씩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뭔가 독특하다. 일렁거리는 흥분이 짜릿할 정도다. 두려움? 그런 감정도 쾌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여행이 아닌가. 그러나 윌과 루이자는 각자가 원해서 만났던 것은 아니다. 어색함, 초조함, 불안감, 그리고 각자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무런 존재도 아닌 존재로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결정된 6개월의 시간 동안 윌은 그녀를 알아가기 시작했고 루이자는 그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휠체어를 탄 남자가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 밑에서 올려다보았다. 그 눈길이 내 시선과 마주쳤고, 잠시 무서운 정적이 흐르는가 싶더니 피마저 얼어붙게 만들 듯 소름끼치는 신음소리가 났다. 그는 입가를 씰룩거리더니 한 번 더 이 세상 소리 같지 않은 비명을 질렀다. (중략)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모로 꼬아 어깨에 처박은 채 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기괴한 외모였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로 얼룩진 얼굴이었다. 가방을 움켜쥔 내 손등에서 핏기가 하얗게 가셨다.

조조 모예스, 45쪽.

윌과 루이자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인 줄 알았다. 사지마비환자가 된 윌의 실제 모습이 이렇게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윌은 정상적으로 말을 할 수 있으며 고개를 돌리거나 아주 약하지만 한쪽 손을 살짝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상태였다. 6개월 후 자살을 결정한 윌은 그렇게 루이자와 대면했다. 마을(killarney town)에서 반경 2km를 벗어나지 못했던, 윌의 말따나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했던, 엉뚱하고 말 많은 루이자는 또 그렇게 윌을 만났다.

어찌 보면 그 둘은 정반대의 길을 향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는, 장밋빛 인생을 살던 윌. 반면, 모든 것이 불안하고, 모든 것이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는, 처절한 인생을 살던 루이자. 이런 그들의 만남은 끊임없는 충돌과 사건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이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기를 갈망하는 윌은 루이자를 통해 해소하려 한다.

루이자는 그런 윌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자신의 자존심(남아 있기나 했을까?)을 여지없이 무너트리고 치부를 건드리는 그를 미워했다. 아마도 그녀는 과거에 겪었던 미로 사건으로 정신적 트라우마와 함께 자신을 잃은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탈출을 도왔던 것은 윌이었다. 도움을 준 이가 윌이라니. 사지마비환자가 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그가 말이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성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도저히 풀 수 없는 매듭이었다.

나는 이제 혼자 쭈그리고 앉아 흐느껴 울고 있었다. ‘월.’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갈라진 내 목소리가 가슴께 어디쯤에서 나오고 있었다. 덤불 너머, 저 멀리 어딘가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 ‘루이자? 루이자, 어디 있어요? 왜 그래요?’ / 나는 한쪽 구석에, 최대한 덤불숲 아래 기어들어가 있었다. (중략) 영원히 여기 처박혀 있게 될 터였다. 아무도 날 찾지 못할 것이다. (중략) 그는 5센티미터 가량 손을 들어올렸다. 아마 그에게는 최대치였으리라. ‘이런 세상에, 대체……? 이리 와요, 클라크.’ (중략) ‘내 손 꼭 잡아요. 우리 밖으로 나갑시다.’ (중략) 내내 얼마나 입구와 가까운 데서 헤맸는지 알고 나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조조 모예스, 355~356쪽.

윌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사건이 벌어졌지만, 결과적으로 윌이 옳았다. 그는 과거 겪었던 미로 사건에서의 고통 받는 루이자를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치로 손을 들어 올려 꺼내주었다. 아마도 윌은 누구보다도 기뻐했을 것이다. 루이자의 상태가 걱정스러웠겠지만, 조금씩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갈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해했으리라.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타이완의 여행 동안 읽었던 것은 여기까지이다. 귀국 후, 책을 찾기가 두려웠다. 윌과 루이자의 이야기 끝, 지극히 현실적일지, 영화와 같은 일이 일어날지, 무척 궁금했다. 그러나 쉽게 책을 펼치지 못했다. ‘그가 이별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사랑에 빠졌다.’ 처음 책의 앞표지 문구를 봤을 때는 어렴풋이 결말을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끝이 어떨지 알 수 있었다. 다시 책갈피를 찾는 내 손이 떨리고 있었다.

결국, 윌은 스위스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불의의 사고 후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대로 말이다. 하필이면, 그 의지가 죽음이란 말인가. 루이자는 6개월 동안 간병인을 하면서 우연히 윌의 계획을 알게 되었다. 6개월의 시간은 윌이 자신의 부모님께 드리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것을. 그 후 그는 스위스로 가서 그의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루이자는 그의 생각, 아니 사랑하는 윌의 방향을 바꾸려 노력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는 않았다.

루이자는 윌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프랑 부르주아 거리에 앉아 있다. “반드시 프랑 부르주아 거리의 카페 마르키에서 크루아상과 커다란 카페 크렘을 앞에 놓은 채 읽을 것.”이라는 윌의 마지막 편지 때문이다. 루이자가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나 또한 루이자의 눈을 통해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도저히 편지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루이자 또한 “몇 분이 지난 후에야 다시 또렷하게 보였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유치환의 《행복》이라는 시가 떠오르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중략)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못난 친구, 윌, 안녕!

“미 비포 유(ME Before YOU)” 뜻에 덧붙이는 말

글을 작성 후 책의 제목인 “미 비포 유”의 뜻을 알고자 하는 이가 많은 것 같아 개인적인 의견을 추가하여 작성해 본다. 일단, ‘ME’와 ‘YOU’가 누구를 지시하고 있는지 판단이 필요하다. 《미 비포 유》에서는 여러 사람이 자신의 입장으로 윌과 루이자의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이야기의 중심에는 역시 윌과 루이자가 존재한다. 결국, 두 사람 중 누가 ‘ME’인지, 누가 ‘YOU’인지를 구분하면 해답은 쉽게 풀릴 것 같다.

누구의 입을 통해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가? 루이자가 아닐까 싶다. 루이자가 윌을 만나고 윌을 통해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고 또 사랑을 알아가는 과정, 그리고 이별을 겪게되는 일련의 과정, 그 중심에는 역시 루이자가 있다. ‘윌을 만나기 전에 루이자’, 이것이 아닐까? 루이자를 나로 대체한다면 조금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윌을 만나기 전에 나’

이미지 맵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보고 읽고 쓰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2개 입니다.

      • 비밀댓글입니다

      • 타인과 사랑이라는 주제가 생각나서 어렵지만 이 책을 들고 왔습니다. 낯선 곳에서 이 책을 읽으면 조금 더 그 낯설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죠. 저는 즐겁게 보냈는데 아내 눈치 때문에 힘들기도 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