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벗겨내고 너를 칠할 수 있었기를...

요즘 《사진공간 배다리》에서는 2관 개업을 위해 공사가 한창이다. 〈사진다방 배다리〉을 정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갤러리 관장님이 생각하고 있었다는 〈봉다방〉이라는 이름에 애착이 간다. 왠지 향수가 느껴지고 정이 있는 이름이다. 그렇지 않은가?

꽤 많은 인원이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노임을 받거나 어떤 보상이 있지 않음에도 이렇게 어울릴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봉다방〉에서 느껴지는 그 정이리라. 어떤 것을 함께 한다는 것, 받으려고 하지 않고 굳이 준다고도 생각하지 않는 그런 관계 속에서 싹 트는, 다른 세계에서 사는 우리를 같은 세계에서 부끄럼 없이 만나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항상 그대로의 모습을 촬영하는 이영욱 교수

재미있는 풍경을 담아주신 사진공간 배다리 이상봉 대표

아침부터 참여한 분들의 수고로 힘든 일은 마무리된 상태였다. 난 그저 붓을 들고 묵묵히 칠을 했다. 하얀 수성 페인트로 밑칠을 한다. 누군가 수성 페인트인지 모르고 시너를 섞었나 보다. 잘못은 잘못이지만, 끌끌거리고 웃고 만다. 이것도 하나의 추억이 되겠지. 제대로 물을 섞어 밑칠을 시작한다. 밑칠이 끝나면 검정색을 칠한다고 한다.

밑칠이 끝나고 마르기를 기다린다. 삼삼오오 모여서 커피나 마시고 담소를 나눈다. 벚꽃이 한창인 시절에 꽃샘바람이 몰아 쳐 난감한 나날이지만, 여럿이 모여 일하니 큰 문제는 없다. 간간히 강풍이 불고 때 아닌 소낙비도 떨어지고 감성적인 날에 감성적인 노동이다.

키가 크다는 이유로 높은 곳, 쉽게 닿지 않는 간판에 검정 페인트칠을 맡게 된다. 싫지만은 않다.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좋은 거지. 페인트칠 하는 날에 하얀 새 옷을 입고 와서 생뚱맞기는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다만, 아내에게는 많이 미안하다. 어찌되었건, 무광의 검정색이 내 손을 거쳐 점점 퍼져나간다.

나도 담아본다.

내가 칠하고 있지만, 내가 한 일은 아니리라. 우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나 또한 그 일을 할 수 있었고 그들 또한 그 일을 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얀 새 옷을 벗겨내고 나는 너를 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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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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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8개 입니다.

      • ㅎㅎㅎㅎㅎ봉다리...ㅋㅋㅋ

        조만간 이곳에 한번 가보려고 합니다.^^
        동네도 전부터 궁금하기도 했었구요..

      • 배다리에 오시면 '배다리 안내소'를 들러보세요. 마을을 소개하는 곳으로 안내 지도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 제가 활동하는 '사진공간 배다리'와 '사진다방 배다리'를 둘러 보시면 기쁨이 그득할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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