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비틀린 시선.

존 버거, 《다른 방식으로 보기》, 최민 옮김, 열화당, 2012

모든 그림의 독자성은 그림이 걸려 있던 장소가 지닌 독자성의 한 부분이었다. 때로는 그림을 다른 데로 옮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그림을 두 장소에서 동시에 볼 수는 없었다. 카메라가 어떤 그림을 복제하면, 그 이미지의 독자성은 파괴된다. 그 결과 그 이미지의 의미는 변화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의미가 여러 가지로 늘어나고 많은 의미들로 조각조각 나누어진다.〔24, 25〕

존 버거가 첫 장 마지막 부분에 언급 하였듯이 위 생각은 발터 벤야민의 글, 《기계 복제 시대의 미술작품》에서 빌려 왔다. 기계 복제를 통해 쉽게 볼 수 없었던 원본과 유사한 복제품을 볼 수 있다는 기대는 이런 의미에서 처참한 결과를 초래했다. 비록, 많은 구경꾼이 새로운 경험에 황홀해했지만, 그 뒤편에는 또 다른 의미가 내포되었던 셈이다.

수많은 그림 속에 그림, 먹음직스러운 음식, 넓은 사유지와 같은 개인의 부와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이용되었던 과거의 유화는 더 이상 과거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광고가 그 지위를 이어 받았다고 버거는 말한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광고에는 현재는 없고 미래만이 존재한다. 개인의 부족한 현실 또는 처참한 현실을 드러내고 그 자극을 이용하여 소비를 부추긴다. “백일몽 속에서 피동적인 남녀 노동자는 능동적인 소비자로 바뀐다.”는 버거의 말처럼 우리는 소비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렘브란트 판 레인, 〈자화상〉 (사진=위키백과)

렘브란트 판 레인의 〈자화상〉은 마치 과거에 촬영된 증명사진과 같은 느낌이다. 배경은 어둡다. 그의 뒤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은 듯하다. 과거의 무상함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전면에서 조금 왼쪽으로 그의 얼굴이 위치하고 있다. 은은한 빛이 이마에 담겨져 있다. 어디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린 것인지, 그 궁금증마저 쓸 때 없는 일이다. 그는 이렇게 우리를 비틀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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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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