빔 벤더스: 『한번은,』, 사진의 개인 혹은 대중적 사용

빔 벤더스, 이동준 옮김, 『한번은,』, 이봄, 2011

1

사진은 모호하다. 글은 모호함을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사진은 글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사진에 설명을 덧붙이는 것만큼 위태로운 것은 없다. 구체적으로 ‘사진을 위한 설명’이 아닌 ‘설명을 위한 사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읽힌 사진은 이미 정해진 시선으로 바라볼 일만 남게 된다. 고정된 ‘사진 읽기’는 대상의 상(像) 혹은 지시만을 남긴다.

존 버거는 『말하기의 다른 방법』(1982)에서 고정된 ‘사진 읽기’를 역사와 동치 시킨다. 즉, 결정된 관념 혹은 영원한 의미로서의 ‘사진 읽기’를 거부하고 저항해야 함을 언급했다. 저항의 하나로 존 버거와 장 모르가 시도한 것은 짧은 서문과 함께 일련의 사진들을 나열한 「만일 매 순간에…」이다.

그들은 이런 시도가 핵심적인 언어적 표현이나 줄거리를 부여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음을 미리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꽤 흥미롭고 인상 깊은 사진의 나열이었다. ‘매 순간’이 주는 의미가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빔 벤더스의 『한번은,』(1994)을 읽고 사진과 글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2

『한번은,』에 등장하는 수많은 초호화 유명인사로 잠깐 고민을 했다. 영화감독, 촬영감독 그리고 영화배우 등 꽤 많은 인물이 곳곳에 소개된다. 그들의 소개는 사진과 글만 아니라 상세한 주석까지 동원된다.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라 하니 나도 모르게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주게 된다. 다소 껄끄러운 나의 시선.

곱지 않던 시선이 부끄럽게 느껴진 순간이 찾아온다. 빔 벤더스가 메르세데스 600을 타고 유명한 감독과 그 밖에 몇몇 사람들과 함께 또 다른 유명한 감독의 초대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나파 밸리로 가는 길을 읽고 부터다. 자동차가 길 한복판에서 고장이 나고 꽤 많은 일행이 발만 동동 구르던 상황이다.

일행 중 누군가 화물차를 타고 와 위기를 모면하기 전까지 나머지 일행은 주위를 서성거린 듯하다. 아래 사진은 그때 촬영된 매 순간일 것 같다. 그리고 나파 밸리에 도착한 오후, 더위를 피해 일행은 호수로 수영을 하러 간다. 앞서 말했던 유명한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만 빼고. 또 다른 감독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이다. 더불어 화물차를 타고 온 이는 레스 블랭크이며 나머지 일행 중 이름이 밝혀진 이는 톰 루디모니크 몽고메리가 있다. 그들은 빔 벤더스의 동료이자 친구이다.

육중한 자동차가 갑자기 길 한복판에서 고장이 나고 말았다. 우린 커다란 목장 근처에서 30분간 지체해야 했다. 대신 구로사와 감독과 루이지애나 출신 플레이보이들로 구성된 케이준 밴드의 파노라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 62쪽.

그때 마침 레스 블랭크가 어디선가 화물차를 타고 나타나 우리 모두 그의 차로 옮겨 탔다. […] 그날 오후는 여느 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날씨가 너무 더워 우리는 호수로 수영을 하러 갔다. ― 62쪽.

구로사와만 빼고. ― 62쪽.

3

『한번은,』을 보며 글과 사진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은 했지만, 어눌한 언변으로 그 생각을 풀 재간이 없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그의 글은 사진과 꽤 밀접하게 연결된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빔 벤더스는 일 그리고 여행 동안 그의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꽤 상세히 기억하여 글로 옮겨 적었다. 물론, 기억하지 못한 일도 있다.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글로 적는다. 그의 글은 사진과 거리를 둔다. 사진에 대한 치장된 형용사를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이다.

존 버거와 장 모르가 보여 준 「만일 매 순간에…」에서 나열된 사진은 “한 늙은 아낙네가 자기 삶에 대해 품는 생각을 뒤쫓고 있다”고 설명한다. 더불어 늙은 아낙네는 가공의 인물임을 밝히고 있다. 어찌 짧은 기간 동안 그녀의 삶과 생각을 알 수 있겠는가. 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모호한 사진만으로 이야기한다.

빔 벤더스가 사진을 통해 이야기하는 많은 이들은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일을 통해서 아는 사람도 있고 오랜 친구로서 등장하는 이들도 있다. 다가감이 다르다. 그는 그들의 내면을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적어도 나보다는 말이다. 읽음이 틀릴지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틀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이미지 맵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보고 읽고 쓰기/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8개 입니다.

      • 비밀댓글입니다

      • 이런 논란은 사진이 전시되는 곳, 다시 말하면 매체의 문제라고도 생각이 듭니다. 블로그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 출간되는 사진집에는 종종 수필집인지 착각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필집 같은 사진집을 더 선호하는 입장입니다만 앞서 글에도 적어 놓은 것 처럼 촬영 당시의 설명이 아닌 사진 자체를 설명하는 글은 사진을 읽는 입장에서는 방해가 되는 것 같아요.

        더불어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는 사진전에도 종종 글과 사진을 혼합한 사진전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작가노트가 아닌 사진과 글이 함께하는 사진전의 경우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사진이 어디에 놓여 전시되느냐에 따라 참 많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온라인 매체에서의 글과 사진은 이제 거부감도 없고 흥미롭게 관전이 되는데 오프라인 매체에서의 '사진전'은 아직 혼란스러운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

      • 비밀댓글입니다

      • 네, 저도 말씀에 공감합니다. ^^

        표현의 한계에 대한 것도 공감이 됩니다. 작가의 몫인지 사진의 모호성 때문인지는 아직 헷갈리지만 말이죠. 여하튼, 어렵다는 것에는 백프로 공감합니다.

        오늘 '빛을 그리워...' 포스팅 좋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가 이해하는 부분이 중간에 적혀있어서 여러모로 관전하기가 편했습니다. 아, 이건 거기에 적어 놔야겠군요. 복사해서 붙여 놓겠습니다. ㅎㅎ

      • 좋은서적 소개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집에 있는 것도 잘 안 꺼내보면서 소개해줄때마다 구매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건 소유욕이 강해서겠죠?^^;;

      • 관심이 아닐까요?
        다양한 책을 접하고 앎을 확장하고 싶은 욕구 혹은 애정!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