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여행법》, 꾹꾹 눌러 담은 자유에 또 다른 자유를 찾는 여행 출발 그때

무라카미 하루키, 김진욱 옮김, 《하루키의 여행법》, 문학사상사, 1999

헌책을 산다는 것은 옛 자국을 만나는 것이다. 자국은 책 앞표지나 글을 읽는 동안 셀 수 없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 남긴 자국을 찾을 수 없는 책도 만난다. 문학사상사에서 1999년 발행된 《하루키의 여행법》 처음 판이 그렇다. 아마도 곱게 책을 읽고 책꽂이에 놓아두다 헌책방 책꽂이에 놓이지 않았을까 싶다. 무려 16년 동안.

“아니, 좀 여러 가지로 직접 보고 싶었지요. 그게 어디든, 실제 이 눈으로 보지 않고는 어떤 곳인지 모르지 않겠어요?”〔45〕

무라카미 하루키는 한 달 동안 멕시코에 머무르면서 ‘나는 왜 멕시코에 왔는가’라는 궁금증이 생겼다고 한다. 서로에게 여행이라는 것은 떠난다는 뜻에서 같지만, 목적은 서로 다르다. 물론, 떠난다는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있겠지만.

하루키는 스스로 물음에 어떤 이유를 찾았을까? 굳이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을지. 가끔 여행에 대한 물음은 다녀오고 나서야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물음의 답은 늘 실망스럽다.

학교 선생님이 아무리 논리 정연한 설명을 해준다 하더라도 이유라는 것은 원래 형태가 없는 것에 대해 억지로 만들어 붙인 일시적인 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언어로 나타낼 수 있는 뭔가에 과연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겠는가? 정말 의미가 있는 것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에 감추어져 있지 않을까?〔46〕

느낌 좋은 여행에는 늘 정해진 규칙이 있는 듯하다. 느닷없이 떠난 여행이나 아무런 뜻도 담지 않고 떠난 여행. 몸은 피곤하지만 어떤 좋은 느낌이 든다. 생각지도 못한 세상과의 만남. 또 다른 나와의 만남. 알지 못하는 다른 이와의 만남. 애초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규칙이라고 하니 너무 딱딱함이 있지만.

푸에르토 바얄타 공항에 내려 배낭을 어깨에 메었을 때는, 솔직히 ‘그래, 바로 이거야. 이 느낌 말이야’ 하고 생각했다. 거기엔 확실히 자유 감각이 있었다. 그것은 나라는 한 사람의 입장과 나 개인의 역할에서 우러난, 연대적으로 배어나는 나 자신으로부터의 자유였다.〔48〕

하루키는 배낭을 통해 전해지는 무거움 안에서 개인 자유를 느꼈다고 한다. 왜 그는 무거움을 통해 가벼움을 느꼈을까. 억누름 안에서 참을 수 없는 기쁨이 있을까. 배낭 안에는 테이프나 책과 같은 오로지 자신만의 물건이 담겨 있다. 타인이 주는 고통이나 사회가 주는 억누름이 아니다. 자유로움 안에서 고른 무거움은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낯선 곳에서 배낭을 멜 때 느껴지는 무거움은 자유의 크기이다. 자유라는 추상적인 것에도 무게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 꾹꾹 눌러 담은 자유에 또 다른 자유를 찾는 여행 출발 그때.

나에게는 누군가에게 뭔가를 강요할 권리도 자격도 없다. 게다가 사물의 인상이라는 것은 언재 어떤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아카폴코는 정말 멋진 곳이었다’ ‘이곳보다 당신에게 어울리는 멋진 곳은 없다’라는 인상을 안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더라도(물론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해마다 몇십 만이라는 관광객이 그곳에 밀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건 그것대로 제대로 본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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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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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2개 입니다.

      • 오래 전 누군가에게서 이 책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유난히 돌아다닌 것을 좋아하던 제게 이책은 참 각별했었는데..
        그 인연의 끝과 함께 제 곁을 떠난 책이기도 하지요..

      • 책마다 이런저런 사연이 생기게 마련인가 봅니다. 그런 공통점을 모아서 글로 적는 것도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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