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 《책등에 베이다》, 우윳빛 가위 사건

이로, 《책등에 베이다》, 이봄, 2014

'베이다'를 본 순간 어릴 적 사건이 펼쳐진다. ‘책등에’라는 앞글에 의문을 품기도 전에. 우윳빛 속살을 봤다. 맨살이 가위에 베이면 이렇게 뽀얀 속살이 드러나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픔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난 온통 그 속살에 마음을 뺏겼다.

정신을 차려 보니 이제 ‘책등에’가 궁금했다. ‘아, 책 이름 적는 곳이 그것이구나. 책등에 베이면 하얀 속살이 보일까’ 엉뚱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가위 사건을 겪은 나로서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우윳빛 속살에 마음을 뺏긴 것처럼 하얀 표지에 정신을 잃는다.

도서관과 서점은 책을 기본으로 하지만 무척 다른 공간이다. 도서관의 책들은 빌려지거나 읽혀지거나 참고되기 위해 있고, 서점의 책들은 대부분 판매와 소유를 위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도서관에서 '이곳은 욕심이 삭제된 구역'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나치게 침묵이 필요한 이유도 그 때문 아닐까. 책의 수량에 한계가 있으니 먼저 보기 위한 경쟁이야 있겠지만, 책을 소장하기 위한 욕망에 비할 것은 아니다. 심지어 절판된 책들도 아무렇지 않게 진열되고 대여되는 곳이 도서관인지라 상업적인 흐름과 무관한, 책의 창고에 가까운 장면들이 많다.〔34〕

《책등에 베이다》는 지은이 이로가 읽은 책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렇다고 읽을 만한 책 소개 정도 책은 아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책 소개는 대략적인 줄거리와 지은이의 이력, 관련된 문구 인용 그리고 주제에 맞는 평가로 구성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방식과는 좀 거리를 둔 것 같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과 책을 읽으며 느낀 감정을 적절히 섞어 놓았다. 또한, 이루는 책 두 면을 가득 메운 사진을 보면 영화를 보는 착각이 든다고 한다. 아마 이런 감성이 책 곳곳에 놓인 책 소개 사진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이 아닌가 싶다.

한 권의 책 전체를 통틀어 단 한 장의 사진만이 두 쪽에 걸쳐 펼침면으로 (여백도 없이) 들어가 있다면, 나는 그 앞에 무력해진다. 다른 사진이나 글이 일정한 레이아웃에 맞춰 부분 부분 진행되다 펼침면 가득 한 장의 사진이 말 그대로, 쏘아진다. 펼쳐진다. 쪽수로 기록할 수 없도록 한 면 가득히. 그때 나는 내 몸이 예고 없이 언어의 공간에서 영화의 공간으로 옮겨지는 착각을 한다. 글을 읽기 위해 열심히 눈을 좌에서 우로,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다가 이상한 기분에 고개를 들면 앞쪽에 거대한 스크린 혹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든지. 그래서 그 부분은 쉬이 넘기지 못한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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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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