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폴 사르트르: 《문학이란 무엇인가》, 요구함 없이 알림판을 놓는 자유로운 작가

장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문학이란 무엇인가》, 민음사, 1998

책을 펼치니 앞 장이 책 몸과 떨어져 있습니다. 많이 읽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안타깝더군요. 재주는 없지만 보이는 풀로 붙여 놓습니다. '문학은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1948년 장폴 사르트르가 고민한 자국이 궁금합니다. 이제 조심스레 펼쳐봅니다.

(잠시 후)

작가는 ‘쳇! 내 독자는 겨우 3천 명 정도겠지’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되며, 반대로 ‘만일 모든 사람이 내가 쓴 것을 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고 생각해야 한다. (중략) 작가란 아직도 이름 지어지지 않은 것 혹은 감히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작가란 사랑이라는 말과 미움이라는 말을 〈솟아나게 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말들과 함께, 아직도 제 감정을 정리하지 못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과연 사랑과 미움이 〈솟아나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는 또한 브리스 파랭이 말했듯이 말이란 〈탄약을 장전한 권총〉인 것을 알고 있다. 말을 한다는 것은 권총을 쏘는 것이다. 작가는 물론 침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총을 쏘기로 작정한 바에야, 어른답게 과녁을 노리고 쏘아야지, 어린애처럼 오직 총소리를 듣는 재미로 눈을 감고 무턱대고 쏠 수는 없는 노릇이다.〔32-33〕

나부터 어린애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혼자 말하고 혼자 즐거워하고, 이렇게 얘기하면 모두가 알아듣고 같이 즐거워할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 말하고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 움직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안에 숨어있던 응어리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냅니다. 꾹꾹 눌러 다시 숨기려고 하지만 쉽지 않더군요. 이제 참으로 이런 모습을 드러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꾹꾹 눌러 드러내 보려 합니다. 무엇인가를 말한다는 것은 풀어헤친 머릿결을 가지런히 묶는 마음가짐보다 더 큰 마음가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각에서는 대상은 본질적인 것으로, 주체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주어진다. 한데 주체가 창조 행위를 통해서 본질성을 추구하고 그것을 획득하게 되는 경우에는 대상이 비본질적인 것으로 되고 만다. (중략) 작가가 도처에서 만나는 것은 오직 ‘자신의’ 앎, ‘자신의’ 의지, ‘자신의’ 기도이며, 요컨대 자기 자신이다. 그는 다만 자신의 주관성과 접촉할 뿐이다. (중략) 정신의 작품이라는 구체적이며 상상적인 사물을 출현시키는 것은 작가와 독자의 결합된 노력이다. 예술은 타인을 위해서만, 그리고 타인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다.〔60-64〕

많이 어려운 얘기입니다. 또렷이 하나하나의 낱말을 보고 읽습니다. 맑은 마음으로 하나하나의 뜻을 살핍니다. 나로 시작해 하나하나의 뜻 합을 찾습니다. 그럼에도 참 어렵습니다.

사르트르가 얘기하는 ‘사물’의 뜻은 무엇일까 싶습니다. 본래 사물은 이것저것도 아닙니다. 덩그러니 어느 곳에 놓여있을 뿐입니다. 이녘이 보고나 만지거나 얘기하지 않으면 세상에 없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올바른 마음 작품은 자세한 꿈같은 사물이라 얘기합니다. 그것을 드러내려면 작가와 독자가 서로 힘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작가가 만든 작품은 이녘이 읽어야 비로소 꿈꾸는 사물이 됩니다. 사물에 많은 뜻이 생겨납니다. 많은 뜻 합이 생겨납니다. 이것이 되풀이되어 드러나는 것이 ‘예술’입니다.

작가는 독자들의 자유에 호소하기 위해서 쓰고, 제 작품을 존립시켜 주기를 독자의 자유에 대해서 요청한다. 그러나 작가의 요청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또한 그가 독자들에게 주었던 신뢰를 자신에게 되돌려주기를 요청한다. 다시 말해서 독자들이 그의 창조적 자유를 인식하고, 동일한 성질의 호소를 통해서 이번에는 거꾸로 그의 자유를 환기시켜 주기를 요청하는 것이다. 사실 바로 이 점에서 읽기의 또 다른 변증법적 역설이 나타난다. 즉 우리들 독자는 우리의 자유를 느끼면 느낄수록 더욱, 타인인 작가의 자유를 인식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작가가 우리에게 요구하면 할수록 우리도 더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다.〔75〕

페이스북을 보면 많은 사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좋은 소식도 있고 나쁜 소식도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소식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소식도 있습니다. 그중 서로 '요구'하는 얘기입니다. 사르트르가 말하는 작가는 알림판을 놓고 비우고 다시 알림판을 놓고 비우는 이라 얘기합니다. 채우고 비움을 다시 하면서 독자를 인도합니다. 그렇다고 독자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묵묵히 알림판을 놓을 뿐입니다. 빈 곳을 채우는 것은 독자가 할 일 입니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자유를 느끼고 반대로 작가의 자유도 느낍니다. 장폴 사르트르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쓰기의 예술이란 자신의 존재를 역사화하기를 받아들이는 한 인간이 인간 전체에 관해서 동시대의 모든 인간에게 던지는 독자적이며 사대적인 호소인 것이다.〔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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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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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8개 입니다.

      • 책을 오래 가지고 있다 보면 표지가 떨어지곤 하지요. 저는 목공풀로 딱 붙여놓곤 하는데 그러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새책처럼 단단하게 붙곤 합니다. 그러면 어쩐지 새책을 얻게된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오곤 하는데..비우지 않고 채우는 이런 방법도 있습니다. :)

      • 목공풀이 있었군요. 아이 학교 숙제로 가끔 사용해봤는데 정작 쓰임을 잘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무더위를 독서로 이겨내시고 계신게 아닐까 싶습니다. 하노이->싱가폴->호치민으로 이어지는 출장을 다녀오다 보니 한동안 뜸했습니다^^;;

      • 바깥일이 많군요. 피곤하실텐데 들러 주셨군요. 저는 흑백님처럼 바깥일은 없는데 딸린 일이 많군요. 정리가 안 되서 글도 잘 적지 못하고 있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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