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식: 《사진산책》, 일상 속에서 건져낸 사진이야기

한정식, 《사진산책》, 눈빛, 2007

어려운 말이 많았던 한정식 님의 다른 책과는 달리, 당신이 살아오며 보고 느꼈던 것을 사진을 통해 얘기하고 있다. 아마도 그의 어려운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는다면 겹치는 글이 보일 것이다. 그래서 《사진산책》은 반가운 책이다.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는 참 곱다. 말씀도 어찌 그리 예쁘게 하시는지. 연세를 알 수 없지만 육십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듣는 내내 참으로 이것이 우리 말이 아닐까 느꼈다. 정작 우리 말을 모르니 느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나지막한 목소리와 정겨운 우리 말로 물어보는 그 목소리를 더 듣고 싶어 대답하지 않아도 될 말을 계속 했다. 그런데 참 바보스러운 것은 내 말이다. 쉽게 말해도 될 것을 알아듣기 힘든 말밖에 할 수 없으니 부끄럽고 또 부끄럽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은 슬픈 일이다. 사라져 없어지는 것을, 사라져 없어진 것을 확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돌아갈 수 없음의 아픔. 돌이킬 수 없음의 슬픔.
그래서인가 사진을 찍힐 때면 누구나 웃으려고 애를 쓴다. 웃지 않으면 주위에서 웃으라고 김치고 치즈고 마구 입에 물려 준다. 웃고 있는 사람의 사진은 그래서 슬프다.〔31〕

한정식 님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사진에 있는 아버지를 잘라냈다고 한다. 보기 힘드셨을 것이다. 물론, 당시 그의 말씀처럼 사진을 통해 아버지를 생각해 내고 가까이 느끼며 살 수 있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밤마다 죽은 이가 꿈에 나타나고 꿈에서 깨어 보니 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꿈이야 가끔 꾸니 견딜 수 있겠지만, 사진은 늘 꿈꾸고 이가 없다는 것을 알린다. 그래서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은 슬픈 일이다.

1980년 5월에 찍은 사진1은 글자만 읽어서는 아무런 뜻이 잡히지 않는다. 바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고서야 이 문구의 뜻은 읽힌다. 민중의 분노와 저항을 어떻게든 달래 버려고 걸어 놓은 글귀였던 것이다.〔45쪽〕

어설픈 사진이건 세련된 사진이건 사진은 하나의 같은 점이 있다. 바로 찍힌 것이다. 찍힌 것이 보는 이만 알 수 있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이름이 알려진 사진가의 사진을 봐도 도통 뭐가 좋다는 것인지 모를 때가 많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니 좋은가 보다 하지 참으로 좋은지는 모른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좋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 좋은지 묻고 싶기도 하다. 용기를 내 물으면 알 수 없는 말로 말을 하니 내가 알 수 없는 무엇이 있나 싶어 그냥 그러려니 한다.

같은 뜻으로, 사진가의 사진 알림 말은 왜 그리 어려운가? 비평가는 또 어떤가? 사진을 보기도 전에 기운 뺏기기 쉽고, 사진을 보면 뭔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니 일 분도 머뭄 없이 자리를 뜬다.

대상이 말을 하지 않는 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게 사진가요, 일단 대상이 입을 열면 사진가와 별 상관없이 말을 잘하는 것, 이것이 사진이다.〔80쪽〕

아무리 낡은 사진도 내가 아는 사람이거나 아는 곳이라면 쳐다보게 된다. 어설프거나 색이 바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진을 볼 때 아무런 느낌이 없다는 것은 내 안에 그것과 연결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것이 '사진은 말이 없다'는 얘기이다.

이제 대상이 말을 할 때는 언제인지 알 수 있다. 내가 아는 것, 나와 연결된 것이 사진을 통해 발견될 때, 사진은 말을 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레 내린 비에 빨래를 걷으러 옥상으로 달려간 일이 있는 사람은 옥상에 널린 빨래 사진을 보면 옛일이 떠올라 피식 웃음을 지을 것이다. 아마 당신 옆에서 웃고 있는 사람도 같을 것이다.

이미지 맵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보고 읽고 쓰기/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2개 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