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 《사진은 사상이다》,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간 사진

최민식, 《사진은 사상이다》, 눈빛, 2010

예술을 한다는 것은 뭔가를 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지금’ 당신의 하루를 즐기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자신에게 작은 위안과 휴식을 제공하는 데서 시작된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은 하게 되어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새로운 길을 향한 문이 열리며, 자신이 유용한 존재임을 느낀다. 그리고 마침내 일이 놀이처럼 느껴진다.(26쪽)

늘 짜증나던 말이 ‘놀이’라는 말이다. 최민식 님의 글을 읽고 부터는 덜 하지만 여전히 그 말은 뭔가 껄끄럽다. 내가 그 말에 짜증이 나는 이유는 정말 놀고만 있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사진 촬영에 대한 가벼운 또는 진지한 고민 없이 그저 겉을 맴돌기만 한다. 마음 맞는 이들과 사진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사진 촬영을 하면서 대상에 대한 얘기 없이 온통 딴 얘기뿐이다.

‘난 사진으로 얘기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라며 그럴 듯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듣는 이는 원가 있겠지 싶어 묻지도 못한다. 사실, 사진을 봐도 알 수 없으니 묻고 싶은 것도 없고 알고 싶은 것도 없다. 보통 우리는 사진을 찍을 때 어떤 유혹, 이끌림에 셔터를 누른다. 이렇듯 내가 왜 그것을 찍었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 지나 그때 찍은 사진을 보고 이유를 알아채는 일도 있는데,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대부분 잊게 되니까.

개인의 지혜 축적은 이 세상을, 그리고 자신의 동기, 습성 나아가 삶의 경험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아는가에 달려 있다. 눈은 감각기관에 불과하다. 무엇을 보고, 얼마만큼 보는가는 마음에 달려 있다. 미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이 진정으로 사물을 보기 시작해야만 진정으로 사물을 느낄 수 있다.”(58쪽)

주제를 가지고 사진을 찍는 일도 있지만 보통은 그냥 이끌리는 대로 사진을 찍는다. 중요한 것은 이끌림의 까닭을 아는 것이다. 건물에 이끌리거나 사람에 이끌리거나 도시에 이끌리거나 밤풍경에 이끌리거나, 내가 왜 그것을 보고 셔터를 눌렀는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생각 없이 사진을 계속한다면, 결코 마음은 채워지지 않는다. 늘 빈속으로 허기를 느낄 뿐이다.

아이 사진을 찍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랑’이 아닐까 싶다. 아이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건 사진 안 아이를 본 것이 아니고 아이 밖 사진을 본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도 인화해서 놓아두면 언젠가는 그 사진을 다시 볼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엔 몰랐던 알 수 없는 황홀함과 빠져드는 시선을 느낀다면, 그때 비로소 사진 안 아이를 보는 당신을 만난 것이다. 사진 안 대상을 보지 못한다면, 아무리 보기 좋은 사진도 한두 번 보고 잊게 된다.

정직한 마음은 우리를 스스로 자신의 행동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깨닫게 하는 데 힘이 되어준다. 정직한 마음이 있으면 자기 행동을 숨기지 않는다. 정직한 마음이 작용하는 순간에는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온갖 솔직한 감정들이 다 우러나온다. 정직한 마음과 감정의 관계는 의식과 아이디어의 관계와 같다. 정직한 마음은 상대방에 대한 진실한 감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의식이 자기의식의 ‘지성적인’ 부분이라면 정직한 마음은 ‘감성적인’ 부분이다.(62쪽)

마음을 끄는 사진은 스스로도 정직하게 다가간 것이다. 사진을 보는 내내 불편하다면 스스로 정직한 마음으로 다가갔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진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도 이유도 없다. 색상이 신경 쓰이거나 삐쭉 나온 나뭇가지나 늘어진 전선에 자꾸 눈길이 멈춘다. 참으로 대상에 끌렸다면 이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진 안을 잘 정리하는 것은 이런 겉 끌림을 이겨 냈을 때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사진 안을 정리해서 다시 사진을 찍은 들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겉 끌림을 이겨 내고, 사진 안을 정리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 있다. 잠시 즐거웠다고 해야 할지,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이지. 내가 꽃을 찍지 않는 까닭은 그 안을 들여다볼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생각할 수 없다. 요즘 드는 생각은 꽃은 스스로도 가치가 있겠구나 싶다. 다만,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상상할 수 있는 사진이면 어떨지. 웃고 있는 아이 사진에서 행복과 책임감을 함께 느끼듯이 활짝 핀 꽃을 보면 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꽃은 다음 삶을 위한 시작과 끝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정치적·사회적·지적 표현들과 병행하거나 상호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관계를 염두에 두고 사진을 살펴보는 것은 인간과 그 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생활을 명확히, 그리고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줄 것이다. 사진은 역사적 산물이며, 그 시대의 이해 가능한 기록으로도 설명되어야 한다. 사진은 항상 그 시대의 사상·느낌·태도에 대한 명시적·묵시적인 기록이다.(122쪽)

최민식 님은 휴머니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사진가이다. 본인이 평소 그리 말씀했고 책에서도 수차례 당신은 그런 사진가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그것을 통해 요즘을 기록해 나중과 예전을 연결하고 뭔가 변화할 수 있는 꺼리를 보여주고 싶으셨나 보다. 인천 ‘사진공간 배다리’에는 ‘사진방 배다리’라는 작은 공간이 있다. 사진을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차도 마시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원래 사진 전시는 위층에서 하는데 종종 아래층에서도 전시를 한다. 아래층에 전시가 없을 때는 관장님 소장품을 전시한다.

그때 최민식 님의 작품 한 점을 봤다. 어미가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세로 사진이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이다. 아이는 누나로 보이는 자그마한 아이 등에 보자기로 단단히 매여 있다. 두 사람의 눈길은 모두 젖을 물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는 젖을 바라보고 있겠지. 가만, 누나도 젖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독한 가난 탓이다. 화면을 꽉 채운 세 명의 모습은 모든 것을 드러낸 듯 해 부끄럽기까지 하다. 어미의 젖, 누나의 시선 그리고 아이의 살려고 하는 본능, 그 모든 것이 그 한 장에 담겨 있다.

이 사진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도 있을까? 있을 수도 있겠지. 내가 예전 그대로라면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어미가 아가를 바라보는 눈길에 사랑을 느끼고, 누나가 동생을 바라보는 눈길에 든든함을 느끼고, 아가가 젖을 빠는 모습이 마냥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마음은 사라지고 없다. 어미의 눈길에서 무거운 부모의 심정이 느껴지고, 누나의 눈길에서 배고픔이 느껴지고, 아가의 젖 빠는 모습은 처절하다. 아, 떠올리고 싶지 않은 가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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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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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2개 입니다.

      • 최민식 선생..사진을 시작할 때 꽤나 강렬한 인상을 준 분 중의 한 분인데.. 참 인상적이었지요..
        요즘은 이런 분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국내나 해외나.. 뭐랄까 천재들이 사라진 시대일까요..
        한동안 일상에 이리저리 치이느라 찾아뵙지 못했네요.

      • 요즘 저도 상황이 그렇습니다. 아시안게임 프로젝트와 해안선 프로젝트를 같이 하다 보니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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