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선: 사진철학의 풍경들, 다섯 가지 느낌

진동선, 『사진철학의 풍경들』, 문예중앙, 2011

첫 느낌

그늘 속에서 된더위를 피하며 찾아간 서점에서 만난 흥미로운 책 하나를 소개해본다. 아직 처음 몇 페이지만을 읽었지만 느낌이 좋다. 무엇보다 이 책을 들고 온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아래 내용을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이곳을 펼치게 되었는지.

"앞서 읽었던 사르트르의 『상상계』와 한번 겹쳐보라. 그리고 상상계의 주인공 피에르와 『카메라 루시다』의 주인공 어머니를 짜맞춰보라. 두 철학자의 고민과 갈등은 무엇이며, 무엇이 이들을 힘들게 하는지, 또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혼란에 빠트리고 아프게 하고 상처 입히는지를."

진동선, 『사진철학의 풍경들』, 문예중앙, 2011, 240쪽

추천을 통해 책을 사는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이런 우연을 통해 책을 만나고 알아가고 있다. 물론, 그 우연은 필연을 가장한 우연일 수 있지만 말이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손에 땀이 흥건하다.

느낌 좋은 물음

잠시 생각해본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물음을 하는지. 어떤 물음이라도 상관없겠지만, 사진에 관한 물음이라면 더욱 좋을 듯하다. 진동선의 『사진철학의 풍경들』은 사진에 관한 끊임없는 질문에 대해 철학적 사유를 거쳐 가장 가까운 답에 이르는 여정이다.

앞서 한 말을 수정해본다. 가까운 답에 이르는 것이 아닌 사유의 강을 건너는 밀고 당김의 여정이다. 느낌 좋은 사진에 대한 물음이 곧 당김이다. 그런 사유를 거치면서 사진의 본질이 점점 다가온다. 거의 강을 건널 무렵, 이내 다시 멀어진다. 답에 다가갈수록 또 다른 물음이 생겨난다는 이야기다. 

진동선은 이런 묻고 답하는 행위를 끊임없이 반복하여 그가 생각하는 사진의 본질, 즉 풍경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인식하고 사유하고 표현하고 감상하며 마음으로서 느낄 수 있는 사진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느낌 있는 사유

사진을 찍는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사진도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어떤 사진을 보고 좋은 느낌이 들었다면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순간 그 느낌의 정체는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보자. 사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진동선이 의도한 끊임없는 사유의 시발점이다.

"사진함은 사진을 통해서 사유한다는 것이다. 작고 하찮지만 충만한 해석을 기다리는 피사체와의 만남이다. 렌즈 앞에 놓인 수많은 피사체들, 그 많은 피사체 가운데 사진을 통해서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사진함은 하찮은 사물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이다. 사진이 철학과 만날 수 있는 공통적인 지점은 바로 하찮은 사물이 놓인 '거기 있음'이다."

위의 책, 48쪽

작다, 크다의 의미는 상대적이다. 내가 본 것이 '이곳'이라면, '저곳'이라면, '그곳'이라면 점점 그 상대성은 증폭된다. 작고 하찮다는 것이 크기의 문제는 아닐지라도 우주 속에서 지구는 작고 하찮은 존재이며 이를 근거로 점점 그 폭을 좁히면 인간과 비교하면 개미는 작고 하찮은 존재가 된다. 물론, 개미 사회의 그 거대함에 놀라기도 하지만 말이다.

느낌 있는 표현

물음과 그에 대한 사유를 거쳤다면 이제 표현할 준비가 된 것이다. 진동선은 이것은 '사진을 연주한다는 것'이라 표현했다. 최근 개인 블로그에 소개된 「빛의 건반」이 생각나는 표현이다. 그의 사진처럼 연주하기 위해서는 준비물이 필요할 듯하다.

"주제(why), 소재(what), 대상(how)"

위의 책, 142쪽

진동선이 말하는 준비물은 세 가지이다. '주제'란 주체인 사진가가 담고 있는 사상, 사유 혹은 관념의 총체이며 이는 'why(왜)'라는 사진의 존재 이유를 묻는 것이다. '소재'란 주제를 떠받치면서 스스로 몸이 되는 가시적 전체이며 'what(무엇)', 즉 무엇을 찍었는가를 묻는다. 마지막으로 '대상'은 파인더에 담기는 바로 그것, 그 부분이다. 대상은 소재 일부로서 반드시, 필연적으로 소재의 울타리 안에 있다. 이는 'how(어떻게)'라는 접근 방법, 사진적 행위에 대한 타당성을 묻는 것이다.

다시 그의 사진으로 돌아가 보자. 「빛의 건반」을 직접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볼 수 없는 이를 위해 말로써 사진을 풀어 본다. 어느 골목길인 듯하다. 주변은 그리 밝지 않아 뚜렷하지 않지만 중요하지는 않다. 중앙에는 한 아이가 보인다. 헌데 아이의 몸짓이 흥미롭다. 마치 무용수처럼 예사롭지 않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이 뒤로 여럿의 나무의자가 일렬로 길게 늘어져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빛이 흐른다. 왜 그늘이 생겼을까? 결코, 왼쪽에 놓인 건물로 생긴 그늘이 나무의자를 침범하지 못한다. 아, 오른쪽에 숨어 있는 고목. 사이사이로 빛이 흐르게 한 것은 바로 그 고목의 존재이다.

모든 소재가 어울려 마치 피아노의 건반을 연상케 한다. 무엇보다 아이의 몸짓. 게다가 여린 소녀의 몸짓이다. 이것을 "경이롭다"고 말한 진동선의 그 짧은 말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어느 것 하나 부재했다면 표현할 수 없는 사진. 이 사진에서 나는 '느낌 있는 표현'을 목격했다.

느낌 있는 철학

"사진이라는 끊임없는 선택과 판단 앞에서 어떻게 하면 사물의 외관 뒤에 숨어 있는 의미에 대해서, 또 사물의 본성에 대해서 그것들을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인지, 추리해낼 수 있을 것인지 하는 탐색, 시선의 고유한 감각에서부터 하찮은 사물의 존재성까지 철학 안에서 철학의 시선으로 말해보고 싶었다."

위의 책, 329쪽

나는 진동선이 소개한 다양한 철학가, 사진작가, 비평가의 이야기는 이곳에서 소개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소개한 이들 중 익히 책을 통해 만났던 반가운 이도 있었다. 롤랑 바르크, 장 폴 사르트르, 장 보르디아르 그리고 수전 손택 등이다. 사실, 이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진동선은 그들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궁금했다. 「첫 느낌」에서 언급했듯 하필 그 부분을 펼쳤는지.

'우연을 가장한 필연', 요즘 들어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서점에 갔던 날은 생각하지도 않게 그렇게 걸어갔고 이런저런 책을 들춰보다 이 책을 만났다. 그리고 그곳을 펼쳤다. 이것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지만, 사진은 그런 감춤과 들춤의 사이에서 더욱 빛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미지 맵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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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4개 입니다.

      • 정작 사진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정작 사진에 대한 책은 얼마나 읽었는가를 반성하게 됩니다^^;;

      • 하하, 아시겠지만, 제가 사진을 잘 찍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관심이 있고 길게 고민할 수 있는 사진의 존재, 본질에 관해 궁금증을 풀어 가고 있습니다. 사진에 관한 책도 읽고 사진도 찍고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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