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 《소소한 사건》

롤랑 바르트, 임희근 옮김, 《소소한 사건》, 포토넷, 2014

육체의 기억에 따라 만든 사진들

또 다시 롤랑 바르트의 얘기인데, 이제는 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주절거리는 시답잖은 사진 얘기 중에 바르트가 등장하지만, 정작 정확한 표현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도 있고, 저런 얘기도 있다는 식이니 읽는 사람은 지루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다시 그의 얘기다. 정확히는 그의 소설을 읽고 떠올랐던 사진에 대한 얘기다.

우리는 여기서 글 첫머리에 얘기했던 것, 그리고 파고들어가 보면 결국 그림엽서의 굳어버린 부동성을 무너뜨리는 이 고장의 힘이라 할 수 있는 그것을 다시 만나게 된다. 너무 사진만 찍으려들지 말 일이다. 판단하려면, 사랑하려면 여기 와서 있어 보아야 한다. 그래서 곳곳의, 사철의, 시간의, 빛의 일렁이는 물결무늬 전체를 두루 겪어볼 수 있어야 한다. (20쪽)

첫 번째 이야기는〈남서부의 빛〉에서 떠오른 것인데, 너무 사진만 찍으려들지 말라는 그의 엄포(?)에 고개를 끄덕였다는 나의 얘기다. 잠깐 어떤 장소를 흘깃 보고 ‘그곳은 그런 곳이더군!’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 역시 뭔가를 판단하려면, 그리고 사랑하려면, 곳곳을 누비며 오래도록 경험해야만 한다. 책이건, 그림이건, 글이건, 사진이건 다 소용없다.

사람은 자기가 느낀 대로 속마음을 표현해선 안 되고, 자기가 기억한 대로 표현해야 한다. (…) 왜냐하면 어느 고장을 ‘읽는다’는 것, 그건 우선 육체와 기억에 따라, 육체의 기억에 따라 그 고장을 인식하는 것이니까. (21,23쪽)

사진은 분명, 이런 육체의 기억과는 사뭇 다르다. 눈으로 봤던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땀을 흘리며 온몸으로 느꼈던 그 기억과 냄새를 사진 안으로 고정할 수 없지 않은가? 오감의 기억을 사진 안으로 고정해야만 육체의 기억은 온전히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두 번째 이야기인〈소소한 사건들(1969년)〉을 읽고 나니,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은 마치, 한 장의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열차 내 바bar의 종업원이 어느 역에서 내리더니 빨간 제라늄을 한 송이 따가지고 물 컵에 꽂아서, 설거지할 찻잔이며 더러운 행주가 마구 널려 있는, 어지간히도 지저분한 개수대와 커피 내리는 기구 사이에 놓아두었다. (26쪽)

마구 널려 있는 더러운 행주와 지저분한 개수대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냄새가 느껴진다. 커피 내리는 기구에서는 또 어떠한지. 야릇한 장소에 빨간 꽃 한 송이가 물 컵에 놓인다. 그리고 바르트는 그것을 (육체로) 찍었다. 이때의 행동은 ‘기억’을 고정하는 순간이다. 다음 날, 바르트는 그 날의 기억을 더듬어 이런 흔적을 남겼다.

그의 글은 마치 한 장의 사진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맞으나 사진일 수는 없다. 하나의 글이니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시간적으로 사진은 내 앞,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을 고정하지만, 그는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저녁에야 그것을 고정했다. 이런 의미에서 바르트의 이 글은 한 장의 스냅사진이면서 결코, 사진일 수 없는 모순이자 부조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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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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