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러스트(Wanderlust) 없는 사진가

늘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어요. 저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역마살, 방랑벽, 원더러스트 그러니까 여형벽이 없습니다. 먼 곳으로 잘 떠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상황에 적응을 하면 또 잘 다녀요. 결국, 첫 내딛음이 문제죠.

매번 한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제가 사진을 좋아하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물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진전에서 작가와의 만남 동안 답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이론사진인데요, 그 작가 분도 저와 같이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하더군요.

집 안에서 사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론사진을 시작했다는군요. 이론사진은 말 그대로 사진 이론을 기초로 해서 접근하는 방식입니다. 각 학문마다 이론이라는 것이 존재하니까요.

글만 적으면 지루하죠.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교묘히 넣어봅니다. 인천 중앙공원. 2014.

그렇다면 이론사진을 본 소감은 어떤지 궁금하실 것 같은데,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다는 거죠. 대부분 그렇지만 사진만 봐서는 뭔지 알 수 없습니다. 구경꾼, 그러니까 보는 사람이 어느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습니다. 딱 봐서 알아보면 좋은데 이건 딱 봐도 알 수 없으니 무시당하는 기분도 듭니다. 그렇지만, 빠져들면 그게 또 재미가 있습니다. 흥미롭죠. 언어에 기초한 이론이 사진으로 표현되었으니 말이죠.

카메라를 들고 골목길을 서성이다 느낌 있는 장소에서 찰칵! 셔터를 누른 경험, 다들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이런 경우 눈이 먼저 반응하고 잊힌 감정이 되살아나면서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는 상황일 거예요.

눈이 와서 공원을 찾았습니다. 눈이 오면 세상이 온통 흑백사진이니 그렇게 담아야 제 맛이죠. 인천 중앙공원. 2014.

이론사진은 그 반대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머리로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는 표상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것이니 말이죠. 제가 알고 있는 사진이론가는 롤랑 바르트와 존 탁 그리고 빅터 버긴이 있습니다.

특이하게 빅터 버긴(Victor Burgin, 1941~)은 사진이론가이자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사진에 기호학을 접목시켰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상호텍스트성이라고 어려운 말도 있는데, 궁금하신 분은 이영준 선생님이 엮은 《사진이론의 상상력》(눈빛, 2006)을 추천합니다.

Victor Burgin: “Life Demands a Little Give and Take” (1974)

Victor Burgin: “Office at Night”

Victor Burgin: “Cordoba”

짧게 위 책을 인용하면, 버긴은 상호텍스트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텍스트들이 특정한 문화적이고 역사적인 지점에서 서로 중첩되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버긴의 다른 사진은 “Pinterest, 빅터 버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김우룡 선생님이 번역한 빅터 버긴의 《사진에 대해 생각하기 Thinking Photography》도 있는데, 책 제목이 기억나질 않는군요. 나중에 찾아서 추가해 놓을께요. 마지막으로 버긴의 사진 사상을 잘 나타내는 말을 옮겨 봅니다.

순수한 이미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순수하게 망막에 맺힌 이미지만을 보는 일은 거의 없다. 언제나 언어가 개입하기 때문이다.

조세현 엮음, 《사진가, 사진을 말하다》, 토트, 2013

이미지 맵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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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8개 입니다.

      • 비밀댓글입니다

      • 어휴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감성이 메말라 문학 작품도 읽는데 제 마음은 이미 사막화 되지 않았나 싶더군요. 그래서 사람 만나려고 출판 프로젝트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 그러고보면 저두 돌아다니는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막상 움직이면 발발거리고 잘 다니는 걸보면 비슷한 점이 많네요~
        지금은 의무감에 마지못해 몸을 움직이고 있지만 말이죠...^^;;


        +
        제 아이디가 차단된 이름이라고 나오네요...ㅠㅠ

      • 차단은 스팸 필터에 영문자 한 자로 된 것이 있더군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일단, 필터는 다 삭제해 놓았어요. ㅜㅜ
        의무감도 좋죠. 일단 발을 들여놔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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