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후의 미술사: 기계복제의 미학

1900년 이후의 미술사: 기계복제의 미학

엘 리시츠키(El Lissitzky)와 세르게이 센킨(Sergei Senkin), 언론의 임무는 대중의 교육이다, 1928 (사진=The Charnel-House)

지난 시간을 되씹어보면, 부르주아는 귀족과 종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빌미로 자본주의 논리를 생산했습니다. 당연히 이를 반대하는 세력에서 저항이 일어났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그 내용입니다. 역사는 저항이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방가르드 실천가들이 선전했던 바로 그 전략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 전략이란 관람자와 관람자의 힘에 대한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예술의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부르주아적 위계를 역전시키며,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선진 산업국가에서 새롭게 부상한 국제 프롤레타리아 공공영역을 착상해 낸 전략을 말한다.

해당 책, 25쪽

저는 대학 다닐 때 부르주아, 프롤레타리아라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당시에는 관심이 없어 잊었는데 이렇게 다시 또 듣는군요. 잠시 담배를 태우고 왔습니다. 언제 100쪽이라고 적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말이죠. 고민해봐야 나이를 먹지 않는 것도 아니고 그냥 꾸준히 할 뿐이죠. (답은 정해져있다!)

공공영역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서 좀 찾아봤습니다. 사회진보연대에서 해당 자료가 보입니다. 7쪽에 달하는군요. 잠시 읽어 보니 부르주아 공공영역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본 문건은 문화나 미디어 관련 정치적 공공영역인 듯합니다. 클럽이나 신문을 떠올릴 수 있겠군요.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신문이 주요 매체였죠.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것도 신문입니다.

아마도 “예술의 교환가치와 사용가치의 부르주아적 위계를 역전”이라는 말은 부르주아 공공영역이 갖는 자율성의 모순, 그러니까 겉으로는 자유를 표방하지만 들여다보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선별된 영역이었던 것이죠. 그것에 프롤레타리아 그리고 대중이 저항했다는 말이 아닐까 싶군요.

그렇다면 어떻게 저항을 했을까 궁금해집니다. 살펴보니 어제 잠시 살펴봤던 아우라를 지워버리는 것이더군요. 아우라하면 참 느낌이 좋죠? 뭔가 있어 보이고 말이죠. 하지만 모던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홀로 뻗어 나오는 비범한 형태의 지식(아우라, 관조)이기보다는 참여적인 실천(의사소통, 집단적 지각)”이라는 정의가 오늘 기억해야할 핵심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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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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