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후의 미술사: 화보 잡지와 신여성 등장

과거 산업화 시기 여성의 경제참여율 상승에 대한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것과 비슷하지만 다른 내용을 《1900년 이후의 미술사》(art since 1900: AS1900)에서 읽었습니다. “20~30년대 바이마르 독일에서 등장한 대중 소비자와 패션 잡지가 사진의 제작과 배포에 대한 새로운 구조”〔258〕로 여성 사진가들의 등장을 도왔다고 합니다. 1925년 독일에는 1150만 명의 여성(전체 노동자 수의 35.8퍼센트)이 전문 인력이었으나, 이들 대부분은 대량생산 하층 노동자, 화이트컬러 노동자, 그리고 상점 판매원들입니다.

과연 여성 사진가는 얼마나 있었을까요? 정확한 수치가 없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933년 나치 정부에 의해 바우하우스가 폐쇄되기까지 열한 명의 전문 여성 사진가가 사진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드러난 전문 여성 사진가의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사진은 예술에서 탁월한 손 기술만이 유일한 기준으로 여겨지던 가부장적 통례를 바꾼 기계적이고 과학적인 이미지 제작 장치”〔258〕라는 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다. 경제활동이 늘어나면서 여성은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었고 사진 매체도 이에 부응하여 발전했습니다.

사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예로 잡지를 소개했는데 어떤 형태의 잡지였는지 살펴보고 싶지만 책에는 사진이 없군요. 일전에 소개한 존 하트필드의 「히틀러 경례의 의미: 작은 남자가 큰 선물을 요구한다. 모토: 백만장자가 내 뒤에 있다!」(1932)가 실린 《아이체》가 포함됩니다.

때로 35만 부까지도 찍었던 노동자 계급을 위한 빌리 뮌젠베르크의 《아이체》(1933)〔259〕

발행 부수가 170만 부에 달했던 보수적 중산계급을 위한 울슈타인의 《베이체》(1936)〔259〕

당시 화보 잡지들이 실린 사진은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르포르타주와 포토저널리즘 사진, 광고 사진, 여행 사진 그리고 초상 사진입니다. 이 가운데 책에서는 초상 사진을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생각할 거리가 많은 내용이라 나눠서 고민해봐야겠습니다. 특히 당시 여행사진을 다룬 내용은 사진비평가 박평종의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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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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