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후의 미술사: 1920년대 사진사에서 중요한 두 여성의 자화상

어제 미처 소개하지 못한 여성 사진가를 다시 살펴봅니다. 게르마인네 크룰(Germaine Krull, 1897-1985)과 로테 야코비(Lotte Jacobi, 1896-1990)가 그들인데,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는 “20년대 사진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주인공의 자화상 사진을 비교해 보면, 바이마르 여성들의 사진의 특징과 거기에 구현된 긴장감이 보다 분명해진다.”〔258〕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Germaine Krull, Photographer of Modernity》, 1999년 (사진=The Mit Press)

마이클 스노, 〈저자 권한―사진의 초상〉, 1969년 (사진=National Gallery of Canada)

사진가의 눈과 카메라의 뷰파인더가 겹치는 이런 초상 사진은 요즘 많은 사진가 프로필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반면, 야코비의 초상 사진은 (이곳에서 볼 수 없지만) 자신과 카메라가 함께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리모컨 선이 꼭 쥐여있습니다. 차이가 느껴지는지요? 결국 주체의 문제입니다.

사진 행위 속에서 주체의 문제는 이후 (아마 앞선 책에서 언급되겠지만) 마이클 스노(Michael Snow, 1929-)의 〈저자권한―사진사의 초상〉(1969)이라는 작품을 통해 확장됩니다. 스노 작품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사진가는 결국 왼쪽 귀퉁이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이런 의문이 생길 것 같습니다.

길잡이로 진중권의 《이미지 인문학 1》에서 스노의 작품을 소개한 글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스노의 작품은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이라 부른 것의 사진적 표현이다. 구조주의의 관념에 따르면 텍스트는 저자의 산물이 아니라 구조의 산물이다.”〔177〕 결국, 사진은 저자와는 무관하며 사진 행위, 그 자체로 작동된다는 결론입니다.

덧붙이는 말: 다름이 아니고 요즘 공부하는 것은 좀 짧게 적고 있습니다. 글이 길면 쓰는 사람도 지치고 (사실 지치지는 않습니다만) 읽는 사람(몇 분이나 계실지 모르지만)도 지치고 말이죠. 꾸준함을 늘 생각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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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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