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이후의 미술사: 비정형의 임무는 무엇인가?

만 레이, 「미노타우로스」, 1934년 (사진출처=Private Collection, Paris. ⓒMan Ray Trust/ADAGP, Paris and DACS, London 2004)

조르주 바타유가 말했던 ‘비정형’은 (잘은 모르지만) 자크 데리다의 해체가 떠오릅니다. 먼저 그가 말하는 비정형 단어의 의미, 정확하게는 임무인데,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 언급된 아래 글을 먼저 읽어보면,

‘비정형’의 임무는 그 자체로 형식, 혹은 분류의 문제가 되는 의미 체계 전반을 해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비정형은 분류를 해체시킴으로써 사물들의 “지위를 강등시키거나” 폄하하며 사물들을 동일한 분류로 묶는 데 필요한 유사성이라는 토대와 단절시킨다.〔263〕

아마 그것의 첫 번째 임무는 파괴가 아닐까 싶습니다. 계속 안으로만 들어가서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는, 아니 정말 있는 것인지도 잘 알 수 없는, 고유한 본질을 찾는다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임무 내용이 재밌다 느꼈던 것은 철거 후 폐허만 남는 것이 아닌 또 다른 구조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기존에 구조화된 사물 분류 개념을 파괴하고 다른 것으로 구성한다는 점입니다. 재구성한다는 말과 뭐가 다를까 생각은 해봐야겠습니다. 재구성은 다시 구성하는 것인데 기존의 체계를 파괴했으니 기준이 될 것이 없겠더군요. 결국, 새로운 체계로부터 구성이 생겨나는 개념이 아닌가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체계가 또 다른 체계로 거듭날 수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고정된 구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체계 하에 새로운 구조를 세움을 익힌다면, 이것을 다시 반복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커지지 않을까 싶은 거죠.

참 흥미로운 내용이야! 이렇게 외치고 끝내려고 하는데 마지막 말이 또 흥미롭습니다.

바로 바타유가 비정형적이라 했던 것, 이후에 등장할 어휘를 적용하자면 이를 허상(시뮬라크룸)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265-266〕

‘시뮬라크룸’은 라틴어라고 합니다. 전 ‘시뮬라르크’나 ‘시뮬라시옹’, 두 단어만 알고 있었습니다. 잘 정리되다가 마지막 말에 혼란스럽더군요. 갑자기 허상이라뇨? 이건 시뮬라크룸의 의미를 좀 다시 헤아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허상의 의미를 말이죠. 허상이라는 것이 의미가 있으려면 실상이 있어야 합니다. 즉, 실재가 있어야 뭔가 얘기가 되는 것인데 바타유의 비정형은 허상이라 부를 수 있다고 하니, 말을 바꾸면 실재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군요.

그러나 허상은 다른 의미로 그것이 바로 실재라고 말을 합니다. 실재가 없는 복제가 시뮬라르크고 그것이 실재보다 더한 실재라고 불리니 말이죠. 말이 좀 이상하지만, 그렇습니다. 결국, 이렇게 볼 때 바타유가 파괴하려 했던 것은 실재라기보다는 허상이고 그렇게 해서 구성된 것이 시뮬라크룸입니다. 시뮬라크룸은 복제되고 다시 파괴되고를 반복하는 셈입니다. 이것이 바타유가 말한 비정형의 임무가 아닌가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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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6개 입니다.

      • 말이 꼬이고 꼬여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경향이 있네요. (작가주의란 정말 어려워요.)
        결국 비정형이라는 형태를 명칭하면서 더 이상 비정형이 아니게 된건 아닐까요?

      • 네 맞는 말씀입니다. 구조화된 것을 해체하고 다시 구조화하는 것임에도 기존과 다른 형식을 추구한다고 할까요?

        동대문 DDP가 비정형 건축물이라고 하더군요. ^^

      • 저는 포스트모던의 해체주의와 관련해선 (미디어 분석이 아닌 철학적 담론의 범위에서), 화이트헤드가 일컬은 것처럼 플라톤이 설정한 문제 의식에 대한 풋노트적 반항에 불과할 뿐이지 그 어떠한 생산적 결론으로도 귀결되지 못하고, 자기 파괴만을 내부 순환하는 것은 아닐지 싶기도 했었습니다. 화이트헤드가 물리학자라는 배경을 갖고 있어서 더욱 그런지 모르지만, 자연적 조건에서 나타나는 '자기 조직화'의 증거를 보았을 때 해체와 엔트로피는 우주가 지닌 하나의 단면에 지나지 않을 뿐 그에 상반하는 '중심화'의 경향을 더욱 중시하는 것 같습니다.

        칼 융 심리학에서도 해체(혹은 변환)를 중시하지만, 결국 새로운 인격을 얻는다는 '구축'에 더욱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은...;;

      • 저도 처음에는 해체의 의미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기에 이토록 사유하고자 하는 것인가 의문을 품게 되었습니다. 말씀처럼 또 다른 구축을 위한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이죠. 지금까지 읽으며 느꼈던 것은 기존 구조를 파괴하고 또 다른 구조를 세우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과연 어떤 가치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가치에 대해서는 아직 공부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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