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텍스트: 루이스 하인의 사진은 무엇을 말하는가?

아래 글은 앞으로 김우룡 엮음, 《사진과 텍스트》(눈빛출판사, 2006)를 가지고 독서모임 후 정리한 글입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도 같은 질문이나 혹은 다른 질문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루이스 하인, 〈사회사진〉

Lewis W. Hine, SOCAIL PHOTOGRAPHY, 1909

QUESTION

루이스 하인, 〈방적공장〉, 노스캐롤라이나, 1909

“사진이든 그림이든 간에, 이미지는 우리로 하여금 곧바로 실재와 밀접하게 접촉하게 하는 하나의 표상입니다. 벽화를 그렸던 고대인이나 그림책에 빠져 있는 오늘날의 아이에게서 알 수 있듯이, 이미지는 종족과 개인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통용되어 온 하나의 언어입니다. …… 일반인들은 사진은 사실을 왜곡할 수 없을 것으로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거짓말쟁이가 사진을 찍을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실을 드러내는 우리의 작업에서,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카메라가 어떤 나쁜 습성에 물들어 있지 않나 살피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56〕

사진은 환상이며 마음을 현혹하게 한다. 마치 실제와 접촉하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대 벽화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언어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 하인의 주장이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지만, 사진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을 보고 느끼고 읽는 구경꾼의 몫이 크다. 이런 의미에서 사진을 생산하는 사진가의 역할과 책임이 크다.

DISCUSSION

루이스 하인의 사진을 보면, 역시 사회적 비판을 담은 그의 정신이 느껴집니다. 이는 토론자와 같이 공감한 부분입니다. 주로 논의가 되었던 내용은 ‘사진 자체는 아무것도 아닌지’와 ‘그렇다면, 메시지 전달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입니다.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으니 적당한 사진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습니다. 사실, 적당하다는 의미가 참 모호하지만, 하인의 사진도 그것만으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좀 더 나아간다면, 앞으로 살펴 볼 발터 벤야민의 글과 빅터 버긴의 글에서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볼 것은, ‘이것은 무엇인지’라는 의구심을 통해 의미를 살펴보게 하는 힘이 사진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을 통해 담론이 형성된다면, 사진집이라 할 수 있고 그렇지 않다면 저널이라 할 수 있겠죠. 사실, 이런 생각은 부질없을지 모르겠군요. 하인의 목적은 아동학대를 효과적으로 알려 변화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맵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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