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텍스트: 워커 에반스가 말하는 사진에 있어 놀라움의 일시성

아래 글은 앞으로 김우룡 엮음, 《사진과 텍스트》(눈빛출판사, 2006)를 가지고 독서모임 후 정리한 글입니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도 같은 질문이나 혹은 다른 질문이 있다면, 적어주세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워커 에반스, 〈사진의 재등장〉

Walker Evans, THE REAPPEARANCE OF PHOTOGRAPHY, 1931

QUESTION

Walker Evans, Signs

독일 사진가 프란츠 로의 책 가운데 글: “어떤 한순간의 형태에 대한 범상치 않은 인간적 판단이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진에서도 나타난다…. 완벽한 테크닉을 구사하긴 해도 사진은 늘 별볼일없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아마추어라고 생각하고 기술적으로 불완전한 사람이라도 그가 찍는 사진은 언제나 강한 설득력을 갖는 경우를 종종 본다…. 예술의 정의가 전적으로 시대에 종속되고 임의적이고 별것 아니어서 문제가 되든, 인간의 시각이 완전히 비틀려 전혀 답지 않은 것에만 끌리게 되든, 예술을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표현’으로 충만된 그것 자체로서의 하나의 궁극으로 이해한다면, 좋은 사진 역시 예술에 포함된다.”〔62〕

에반스가 랭거 파취의 사진 방법론을 비난하면서 다음에 소개한 것이 바로 이 글이다. 《사진의 눈》이라는 책에 한 내용으로 사진 기술은 부차적인 요인이고 인간적 판단,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대상을 선택하고 포착하는 판단이 그가 생각하는 사진 ‘표현’이다. 결국, 그것이 충만할 때 사진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에반스는 시종일관 브들레르가 언급했던, 놀라움의 요소는 잠깐의 감흥을 줄 뿐 지속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속될 수 있는 사진은 사회적이고 교훈적인 의도가 있어야 하며, 유형학 사진, 이후에는 아카이브 사진이라 불린 방법론을 문화적 관점에서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카이브 사진은 ‘작가의 죽음’ 을 떠올리게 하는 흥미로운 방법론이다. 에반스가 미국 사진가를 빼면 미국은 진정한 사진의 고향이라 말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어찌 보면, 에반스에게 암울하고 우울했던 대공황 시대에 놀라움의 요소는 더 이상 놀라움의 의미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말한다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사진 방법론을 통해 사진이 할 수 있는, 사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찾고자 했다.

DISCUSSION

워커 에반스는 《1900년 이후의 미술사》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미국 농업안정국(FSA, Farm Securities Administration)에서 활동한 에반스는 다큐멘터리 양식으로 대공황 시절 미국을 촬영했습니다. 토론의 주된 내용도 양식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작년에 진행했던 사진 아카이브 프로젝트에서 인천 해안선 인근을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해안선을 주제로 각자 다른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고 결과물을 전시한 일이 있습니다. 지나보니 아쉬운 점이 많더군요. 다양한 생각한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달리 비슷한 사진 시각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그럴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보이는 것이 그것이었고 각자 주제가 모호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다양한 사진 시각 보다는 보편적인 구성으로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 또한 같은 처지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 아카이브를 다큐멘터리 양식으로 고집할 이유가 있는지를 서로 얘기했고, 서로의 경험으로는 다양한 시선이 각자의 주제에 충족되면 아카이브로 기능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까지 이어졌습니다. 기회가 되면, 이런 방식으로 한번 해보고 싶더군요.

이미지 맵

롤랑존

사진을 읽는다는 것. 글쓰기. R을 알아가는 집생.

    '보고 읽고 쓰기/파편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0개 입니다.

    *

    *